권투부 선배들이 적극 권유했다는 것이고 보면 운동신경이 돋보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는 몇년 전에도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친선축구대회에서 선수로 직접 뛰거나 농구 코트에서 멋진 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으로 남다른 운동신경을 과시하기도 했다.
반 총장이 지금에 와서 다시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오르는 모습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을까.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의 출전은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타이틀 도전권을 획득하고 나아가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 승부를 겨뤄야만 한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 얘기다.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낸 입장에서 인생 최대의 도전인 셈이다. 줄곧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정치판에 뛰어든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선거전을 치를 경우 본인도 상처를 입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사회 원로’로 조용히 남아 주기를 바라는 여론이 적지 않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나 버렸다.
정작 본인은 임기가 만료되기까지 사무총장직에 전념할 것이라며 국내 정세와는 일단 거리를 두는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이미 지난 5월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대권도전 의사를 강력히 암시한 데다 임기가 끝나는 대로 내년 1월에는 귀국보고를 할 것이라며 조속한 등판을 예고한 입장이다.
정식 시합에 앞서 링 밖에서의 신경전이 이미 가열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권으로부터 반 총장에 대한 러브콜이 잇따르는 반면 야권에서는 의도적인 평가절하 일색인 것도 그것이다. 여기에 그의 정치적 진로를 후원하는 ‘반딧불이’ 팬클럽이 조만간 창립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고 내다볼 수는 없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여론조사일 뿐이다. 막상 선거전에 돌입해 무차별 흠집내기가 시작되면 여론조사도 롤러코스터를 타기 십상이다. 그의 나이 올해 일흔둘이므로 건강과 관련한 출처불명의 루머가 퍼질 수도 있다. 현재 미국에서 선거전을 치르는 힐러리와 트럼프보다 2~3살이 많다.
어떤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나설 것이냐 하는 점도 중요하다. 세간에 퍼져 있듯이 출신 지역인 충청도를 배경으로 삼는 것이라면 지역감정만 부추기게 될 것이다. ‘충청 대망론’으로는 당선되기도 어렵거니와 당선되다 하더라도 후유증이 적지 않으리라는 얘기다. 화려한 경력에 걸맞는 국정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의구심이 든다.
선거판은 권투시합보다 더 매몰차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멸을 느끼도록 치사하고 비겁하기조차 하다. 코피가 터지고 눈두덩에 피멍이 드는 것으로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다. 아직도 기회는 남아 있다. 반 총장의 마지막 선택에 달린 문제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