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권태의 본질은 `창조`

권태
피터 투이|288쪽|미다스북스
  • 등록 2011-10-15 오후 2:33:01

    수정 2011-10-15 오후 2:33:01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캐나다 캘거리 대학에서 그리스·로마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광활한 호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인구밀도 낮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다른 곳에 비해 여유롭고 변화가 적은 환경에서 자라고 사는 덕분에 주변의 권태를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저자는 종종 주변과 자신을 둘러싸는 권태에 대해 학자적인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권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태는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문헌을 찾고 명작을 찾아봤다. 권태라는 화두를 잡고 여러 방면에서 생각하고 쓰다 보니 어느 새 책 한권의 분량이 나왔다.

‘그 창조적인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현실에서 주로 부정적으로 여기는 권태에 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한다. 저자는 우선 끝없이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느끼는 지루함이라든가, 혹은 점심을 먹고 살짝 졸린 상황에서 느껴지는 만사 귀찮은 감정, 특정 시간 반복되는 똑같은 일이 지겹게 느껴지는 상황 등을 단순한 권태라고 정의했다.

단순한 권태는 분노와 우울의 두 위험 상태의 중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권태는 예로부터 많은 문학·미술 작품의 주제가 된 이른바 실존적 권태다. 실존적 권태는 만성적 우울, 좌절감, 잉여감, 혐오감, 속박감이 합쳐져 생겨난 하나의 개념이다. 이는 일시적인 상황에 따른 감정상태가 아니라 지성적인 작용의 결과다.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가 실존적 권태에 빠진 인간의 파국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저자는 그간 권태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들이 단순한 권태를 부풀려 실존적 권태로 포장해 여러 부작용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실존적 권태는 지성인들이 만들어낸 학구적인 용어며 책 속에 갇힌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식인들과 작가가 단순한 권태를 부인하고 만들어낸 실존적 권태의 부작용이다. 실존적 권태는 우울증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어느 시대에 느꼈던 단순한 권태마저 일종의 질환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권태란 인간이 겪는 정상적이고 유익하며 흔한 경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수월하지는 않다. 지적인 재미는 있지만 사변적인 전개 탓에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운 대목이 몇 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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