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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두고 웹툰 작가가 됐다. 처음에는 많이 불안했을 거 같다.
김보통 작가(이하 김):많이 불안했어요. 퇴직금 줄어가는 게 눈에 보이니까 무섭죠. 또 그동안 내가 얻을 수 있던 기대소득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어요. 회사는 그냥 다니기만 해도 매달 월급이 들어오잖아요. 나는 수익이 없는데 회사 동기들은 계속 돈을 버니까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는 공포심도 컸어요. 두고두고 퇴사를 후회하지는 않을까? 그러다 이렇게 생각했어요.“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뭘,어쩔 수 없잖아.” 물을 엎질러버리는 것도 중요해요. 물을 엎지르지 않으면 계속 전전긍긍하는 거예요. 사실 엎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럼 이제 물 나올 구멍을 찾아 나서는 거죠. 근데 이게 무서워서 물컵을 손에 꼭 쥐고 사는 사람들은 평생 못 놔요. 망하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이 누군 줄 알아요? 망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한번 망해버리면 안 무서워요. 저는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한 번 망해봤거든요. 그래서 만화 그리다가 망해도 하나도 걱정이 안 돼요. 그때 가서 새로운 길을 찾으면 돼요.
△김보통’이라는 필명은 어떤 의미인가.
김:이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에는 그저 제 본명을 아무도 몰랐으면 해서 정한 거예요. 또 ‘보통(botong)’이라고 하면 뭔가 한국어 같기도 하고 영어 같기도 해서요. 그래서 그냥 정했는데 ‘김보통’이란 이름이 알려지니까 의미가 붙기 시작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의 삶을 응원한다’든지. 결과론 적인 거 같아요. ‘아만자’로 만화가 생활이 끝났다면 ‘김보통’이란 이름은 사라지는 거예요. 근데 ‘김보통’이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니 이것저것 의미도 붙는 거죠. 이제는 그냥 의미 없다고 말하려고요.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다루는 이유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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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스러운’, ‘김보통 장르’를 정의한다면?
김:저는 분명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말하는 게 좋아요. 암 환자, 탈영병, 5.18 시위 현장 외에서 영문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난 사람들까지. 저는 유령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분명 곁에 존재하는데 본 적은 없대요. (대중적인 만화 그리기는 글렀어요.)
△작가님께 가장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품은 무엇인가.
△작가님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과 작가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김: 제 이야기를 많이 봐주시는 것도 좋아요. 좋은데 그거보단 본인의 이야기를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결국 세상과 교감하고 타인과 상호 작용한다는 거잖아요. 이야기를 방에서 혼자 만들지 않아요. 사람을 만난 경험을 통해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요. 물론 남의 이야기를 보는 즐거움도 크죠. 잘 알아요. 근데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드는 즐거움이 남이 만든 이야기를 보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훨-씬 커요. 제가 해보니까 그래요. 처음 본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안 가본 지하철역에 무작정 내려보고, 모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느낀 바를 글로 쓰고 만화로도 그려보세요. 뭐 좀 망하면 어때요? 아니 왜 더 망할 걸 걱정해요? 우리 모두는 이미 대부분 망한 상태예요 (웃음) 부유한 사람들 기준에서 보면 우리는 다 망한 사람들이에요. 다시 한 번 망해도 회복 가능해요. 도박이나 주식을 하라는 말이 아니고요, 마음의 자산을 늘렸으면 좋겠어요. 계속 말하지만 죽기 직전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충남 보령에 가서 녹차 밭을 거닐고 싶었는데” “영국에서 피쉬앤칩스를 먹어보고 싶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눈을 감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다 떠나는 게 어떨까요?
△작가님의 꿈은 무엇인지.
김: 장학 재단을 만들 거예요. 참고로 장학 재단을 만들려면 현금 5억이 있어야 해요.(웃음) 저는 1등한테 장학금을 주지 않을 거예요. 대신 백분위 50.0%인 학생에게 줄 겁니다. 그 친구는 왜 받는지 의아하겠죠? 보통 장학금이라고 하면 1등만 받고 나머지 99는 손뼉 치는 역할만 하잖아요. 태반이 박수만 치다가 인생이 끝나요.그런데 50.0%인 친구가 장학금을 받는다? “박수만 칠 줄 알았는데 내가 상을 다 받네?”라고 하겠죠. 그 학생은 ‘보통’이기 때문에 받는 거예요. 평균을 만든 사람이니까. 경쟁이 과열되는 걸 막는 사람인 거예요. 대단한 친구죠. 저는 터지기 직전의 풍선과 같은 이 사회에 작은 바람구멍을 뚫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경쟁의 강도를 조금 더 낮추는 일을 꼭 하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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