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갑작스레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쪽에서 “개헌은 시대적 과제”라고 목청을 높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서민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무슨 개헌 타령이나”며 핀잔이다. 다만 여느 사안과는 달리 개헌 찬반론이 여야와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를 떠나 전선이 어지럽게 형성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과 노선을 같이 하는 친박(親朴)계조차 내부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제20대 국회 개원 연설에 이어 어제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개헌은 이제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며 개헌론을 폈다. 그가 ‘개헌 전도사’로 알려진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사무총장으로 임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정 의장이 운을 떼자 여야 중진들이 가세하면서 개헌론에 힘이 붙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청와대 측은 “개헌에 대한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개헌=블랙홀’ 공식을 수정할 뜻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비롯해 경제 난국 타개에 국력을 집중해야 하는 터에 개헌 논의가 모든 정치 및 경제 현안을 빨아들이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도 지금은 권력구조를 따지기보다 경제 살리기에 주력할 때라며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채택한 ‘1987년 체제’의 시효가 끝났다는 데 대해서는 대체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개헌 논의를 ‘블랙홀’이라며 덮기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시기다. 우 사무총장은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을 새 헌법으로 치른다는 전제에서다. 그러자면 연말까지는 개헌안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개헌론자들끼리도 이원집정제니, 대통령 중임제니 하며 동상이몽인 마당에 반대파까지 설득해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서두르다가는 자칫 그르치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내년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이 저마다의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 몇몇 정치인들이 권력구조를 멋대로 바꿔 가며 ‘그들만의 리그’를 계속하게 놔둬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