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글로벌 제조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까지 발을 뻗치기 시작했다. 각종 규제를 통해 자국기업을 육성하려는 전략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중국이 디스플레이, 반도체 이어 전기차 배터리까지 국내 기업이 집중하는 분야에서 영역 확장을 시도하면서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밟아가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오는 7월부터 등록업체가 생산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3월 배터리업계에 일정 규모의 △생산 △개발 △품질 △설비 등을 규정한 ‘규범조건 등록제’를 도입한 데 이어진 후속 조치다.
문제는 공업정보화부가 작년 11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등록업체 25개를 발표했는데 모두 중국 회사라는 점이다. 규제를 통해 배터리에 대한 안정성과 신뢰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이지만 자국 배터리 산업에 대한 보호·육성 측면이 반영됐다고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SDI(006400)와
LG화학(051910)은 올해 2월과 4월 등록 신청을 했으나 서류 미비로 반려돼 현재 새로운 신청서를 내놓고 판정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중국 업체들보다 기술력이 앞서 등록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만약에라도 반려된다면 두 회사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앞서 지난 1월에는 삼원계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중국 업체가 주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방식 전기버스 배터리에만 보조금을 주고 삼성SDI LG화학 등이 주로 생산하는 삼원계 방식 배터리에 대해서는 안전성 등을 이유로 보조금 지급 을 중단키로 한 것이다.
| 지난달 중국 베이징모토쇼에서 공개된 지리자동차의 전기차 디하오(帝豪). 48분만에 완충이 가능하며 한번 충전에 253km를 주행할 수 있다. 신정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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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시장의 약 40%를 전기버스가 차지하고 있어 삼성SDI, LG화학 모두 1분기 실적에 타격을 받았다. 한국 정부까지 나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의 입장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결국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규제는 자국 산업 육성과 맞닿아 있다. 중국정보는 지난해 ‘중국 제조 2025’ 선언을 통해 전기자동차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까지 전기자동차 생산을 연간 200만 대, 누적생산 및 판매량을 각각 500만 대로 늘리고 비중도 5% 안팎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여기에는 전기차 배터리, 드라이브 모터, 고효율 내연기관, 첨단 변속기, 경량 소재 등 핵심 부품 육성까지 포함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육성정책은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면서 “중국은 결국 전기차 시장을 육성하면서 핵심 부품을 자국 제품으로 채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한국의 삼성SDI, LG화학 일본의 파나소닉, AESC 등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중국의 BYD 등이 추격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이 자국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 업계 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국은 디스플레이산업에 대한 투자와 규제 강화로 한국의 턱밑까지 추격하는데 성공했다. 1~2년 후면 생산량에 있어서는 한국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또한 반도체 1위 수입국으로서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한 것처럼 전기차 배터리에도 힘을 쏟는다면 전기차 배터리를 미래성장 동력으로 삼은 국내 기업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