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배영환씨(38·가명). 20년째 담배를 피우는 배 씨는 주변 사람들 모두 인정하는 ‘애연가(愛煙家)’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건강을 생각해 흡연량을 줄였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갑 이상은 꼭 피우는 그다. 직장 동료들이랑 당구를 치거나, 술자리를 가질 때면 본인도 모르는 새 두 갑 이상 피우기도 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배 씨에게 담뱃값 인상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가 즐겨 피우는 레종 블랙 담배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껑충 뛴다. 어느 날 배 씨는 뉴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세금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담배 한 갑에 포함된 세금이 1550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몰랐기 때문이다.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면서 사치품에나 붙던 개별소비세까지 포함됐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 1550원→ 3318원 ‘껑충’
배 씨처럼 매일 한 갑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로 인해 연간 내는 세금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올해 담배를 통해 낸 세금은 56만원이 조금 넘었지만, 내년부터는 121만원 이상의 세금을 내게 된다.
현재 담배 한 갑(2500원 기준)에는 총 1550원의 세금·부담금이 포함돼 있다. 구체적인 세목으로 분류하면 지방세인 담배소비세 641원, 시·도교육청 재원으로 들어가는 지방교육세 321원, 중앙정부 몫인 건강증진부담금 354원, 부가가치세 등이 234원이다. 출고가 및 유통마진은 950원에 불과하다.
2004년 이후 10년간 유지됐던 담뱃값 2500원이 깨지고, 내년 1월1일부터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르면 한 갑당 세금은 총 3318원이 된다. 지금보다 무려 1768원이나 더 오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담배소비세 1007원, 지방교육세 443원, 건강증진부담금 841원, VAT 등 433원 외에 새로 부과될 개별소비세 594원도 포함된다.
담뱃값 인상분(2000원) 가운데 1768원이 세금이니, 정부가 말하는 담뱃값 인상은 엄밀히 말하면 ‘담배에 붙는 세금’의 인상인 셈이다.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박씨가 담배로 내는 연간 세금도 121만1070원으로 늘어난다. 박 씨처럼 하루 한 갑의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들이 1년에 추가 부담하는 세금이 연 64만5320원이나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121만원이 넘는 연간 세금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하루 담배 한 갑 흡연자가 연간 부담하게 될 금액인 121만1070원은 기준시가 6억8300만원인 주택에 대한 재산세(교육세 포함)와 같다. 이는 또 연봉 4745만원의 근로소득자가 연간 평균적으로 내는 근로소득세(124만9411원)와 맞먹는 금액이다.
조세 저항에도 밀어붙인 담뱃값 4500원 미스터리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 가격을 2500원에서 조금씩 올리면 세수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한다. 바로 그 정점이 정부가 제시한 가격인 4500원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의 세율을 62%, 70%, 90%로 조금씩 조정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어떤 경우에도 정확하게 4500원 지점에서 세수가 최댓값이 된다. 4500원을 넘어서면 총 세수가 점차 줄어든다. 가격이 5500원까지 오르면 3500원일 때보다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은 늘지만, 그만큼 담배 소비가 더 줄어 걷히는 세금 총액은 3500원일 때와 비슷해진다. 다시 말해 담뱃값 인상으로 최대 세수 효과를 볼 수 있는 가격이 4500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결코 세수 확보가 아닌 국민 건강 증진 차원의 가격인상임을 내세우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담뱃값 인상은 철저하게 국민 건강을 위해 추진한 것”이라며 “담뱃값을 올리면 세금은 더 들어오지만, 세금보다는 건강을 위해 인상한 것이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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