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남진 땅끝, 병풍처럼 서 있는 ‘천관’에 오르다

호남 5대 명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산행
월출산·내장산 등 호남 5대 명산으로 불려
동북쪽 장천재나, 서남쪽 천관산문학공원에서 올라
아육왕탑 지나 구룡봉까지 오르면 다도해 펼쳐져
  • 등록 2021-08-13 오전 6:00:00

    수정 2021-08-13 오전 6:00:00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 정상능선의 구룡봉에서 바라본 대덕읍의 너른 들판과 다도해 풍경


[장흥(전남)=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서울에서 정남향으로 금을 그어 내리면 그 끝에 닿는 곳이 전남 장흥이다. 가는 곳마다 산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사이로 탐진강이 이곳저곳을 적시며 흐르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산과 강, 바다가 어우러진 보기 드문 고장이기도 하다. 특히 천관산(723m)을 비롯해 제암산(779m), 억불산(518m), 사자산(666m) 등 제각기 다른 산세의 위용을 자랑하는 명산으로 병풍을 둘렀다. 이중 천관산은 장흥의 진산으로 꼽힌다. 남해안 다도해를 배경으로 온 산이 크고 작은 바위로 이뤄진 암산이다. 산을 오르는 내내 거북바위며, 코끼리바위 등 재미있고 익숙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아 천연의 바위 전시장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심어준다.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 정상 능선에 있는 구룡봉은 기기묘묘한 암릉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낸다.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관산’

‘천관’이라는 이름 또한 다양한 모양으로 솟은 기암괴석이 주옥으로 장식한 ‘천자의 면류관 같다’고 해서 붙었다. 산 정상 부근의 우뚝 솟은 바위 모양이 그만큼 기기묘묘하다는 뜻이다. 특히 이 바위들의 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때로는 닭의 형상을 하다가 죽순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고, 뭉툭했던 바위가 날 선 칼날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관산을 오르는 방법은 열가지가 넘지만, 산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두개다. 천관산 동북쪽의 장흥 위씨 제각인 장천재에서 오르거나, 반대편 서남쪽의 천관산문학공원에서 오르는 방법이다. 대부분은 장천재 쪽을 들머리 삼는다. 산행 거리는 다소 길어도 접근하기가 쉽고, 오르막 경사도 다소 완만해서다.

반면 산행의 기분을 더 느끼고 싶거나,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이라면 천관산문학공원 쪽에서 오르는 게 좋다. 곧장 바닷속으로 빠져들 만큼 바다와 인접한 구룡봉까지 빠르게 치고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은 건 트레킹 들머리인 탑산사 주차장이 이미 천관산의 허리쯤 되는 높이에 있어 산행 거리가 짧다는 것이다. 차로 주차장까지 오르고 나면 구룡봉까지 산행거리가 1.2㎞ 정도로 확 줄어든다.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30분 남짓이면 닿는다. 다만 산행 거리가 짧은 만큼 비교적 급경사를 쉼없이 올라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 정상능선인 구룡봉으로 오르는 길에 바라본 아육왕탑
천관산문학공원부터 들른다. 이 지역 출신 문인과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글을 50여개 문학비에 각각 새겨 놓았다. 입구의 문탑(文塔)에는 구상, 박완서 등 작가들의 친필 원고 50여점과 연보 등을 캡슐에 담아 묻었다. 그 위로는 주민들의 가훈을 모은 가훈탑 등 돌탑 460여 기가 세워져 있다.

이제 본격 산행에 나설 차례. 천관산문학공원을 지나 탑산사 주차장. 주차장 옆으로 난 돌계단이 산행의 들머리다. 입구부터 급경사가 이어진다. 초입부터 숫제 암벽타기에 가깝다. 가파르고 거친 돌길에 혹여나 발이라도 잘 못 디딜까봐 온몸의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호락호락 길을 내주지 않는 산세가 야속하기만 하다.

발아래만 쳐다보면서 약 20분을 오르면 ‘반야굴’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만난다. 커다란 바위굴 깊숙이 불상을 모셔두고 수행을 하던 장소다. 반야굴부터는 경사가 더 급해진다. 고도를 높일수록 다도해의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는 게 이 코스의 매력이다.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 정상능선의 구룡봉 너른 바위에는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는 물웅덩이가 여럿 있다.


구룡봉에 올라 남해를 굽어보다

그렇게 쉬엄쉬엄 30여분을 더 오르면 탑산사다. 해발 600m 고지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명성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아담하다. 문헌상 신라시대 승려 통령(通靈)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시문선집인 ‘동문선’에 실린 ‘천관산기’에는 기원전 233년 세워진 한반도 최초의 사찰이라고 쓰여 있다. 그 때문에 탑산사는 천년고찰이 아니라 ‘이천년고찰’로 불리기도 한다. 탑산사 앞마당으로 들어선다. 그동안 산을 오르느라 놓친 풍경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바다 쪽으로는 대덕읍의 너른 들녘 뒤편으로 옹기종기 붙었다 이어지는 다도해의 풍경도 아련하게 펼쳐진다.

사찰 주변과 능선에는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또 다른 구경거리다. 모양에 따라 사자바위 거북바위 용바위 종(鐘)바위는 기본이고, 사찰 뒤편에는 구슬을 꿴 듯한 5층 거석이 아슬아슬하게 경사면에 얹혀 있다. 불교에 귀의해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운 인도 아소카 왕의 이름을 따 ‘아육왕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치 거대한 바위를 하나하나 포개어 탑을 만들어 둔 것 같은 모습인데,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아육왕탑 아래로는 탑산사 부속 암자인 의상암터가 있다. 의상대사가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의 기기묘묘한 암릉 중 하나인 아육왕탑
거대한 아육왕탑과 여러 암봉을 지나면 정상 능선의 동쪽 끝인 구룡봉이다. 구룡봉까지는 목재 계단이 놓여 있지만, 생각보다 경사가 가파르고 힘들다. 구룡봉은 아홉 마리의 용이 놀다 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룡봉 너른 바위 위에는 물웅덩이가 여럿이다. 용이나 공룡이 지나간 것처럼 깊게 파였다. 이 웅덩이마다 고인 물은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바로 옆은 가파른 낭떠러지다. 그 아래로 다도해 풍경은 더 넓고 선명해졌다. 멀리 고흥과 완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고깃배처럼 떠 있고, 바다로 향하는 육지가 옷깃처럼 하늘거린다. 돛단배인 듯 낙타인 듯 뒤편 진죽봉 바위 능선도 장관이다. 거대한 너럭바위에 앉아 다도해를 굽어보는 정취가 그만이다. 공기가 맑은 덕에 시야가 확 트여 바다 위로 보석같이 박힌 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장흥의 진산인 천관산 정상능선의 구룡봉
여행메모

문화재청은 지난 3월 천관산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했다. 이른바 ‘명승’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밝힌 문화재 지정 근거는 이렇다. “산등성과 정상 부근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기암괴석 등의 화강암 지형경관, 억새군락 등의 식생경관, 정상부에서 조망할 수 있는 다도해 경관 등 다양한 경관이 탁월하게 연출돼 경관적 가치가 뛰어나고, 백제·고려와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국가 치제를 지내거나 국방의 요충지로 활용된 역사성을 가지며, 일대에 천관사, 탑산사 등 사찰·암자와 방촌마을 고택 등 문화관광자원이 다수 분포해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재청이 밝힌 천관산 인근의 여러 명소들은 시간을 내서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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