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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찾은 서울 종로구 ‘서촌(西村)’. 최근 형성된 서촌지역 상권은 새 단장이 한창이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으로 종로구 누하·체부·통인·청운·효자·옥인동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2011년 ‘세종마을’로 이름을 바꾼 이곳은 낡은 한옥마을의 이미지를 벗고 강북권의 신흥 상업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역세권 상가 임대료 두배 올라… “매물 나오자마자 빠져”
옥인동에서 20년째 악세서리 가게를 운영 중인 박영자씨는 “요즘 새로 문을 여는 가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특히 지하철역 근처인 체부동과 통인동 상가 건물들은 새 단장을 하느라 분주하다”고 말했다.
관광객 등 서촌을 찾는 유동 인구가 늘면서 이 일대 상가 임대료는 이미 가파른 오름세를 타고 있다. 인근 굿모닝공인 신천호 대표는 “역세권을 중심으로 1년 새 상가 임대료가 적게는 1.5배, 많게는 2배까지 올랐다”며 “지난해까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00만~150만원 선이던 역 주변 100㎡짜리 상가 임대료가 지금은 월 200만~25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형기 진솔공인 대표도 “이 근처에 가게를 차리려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크게 늘었다”며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상가 자리가 나오면 바로 빠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촌을 찾은 사람들은 특유의 고전적인 분위기를 이곳의 매력으로 꼽는다. 서울 중심지인데도 고층 아파트나 대형 쇼핑몰에서 자유로운 곳이 바로 서촌이다. 대신 체부동 일대를 걷다 보면 낮은 한옥이 옹기종기 모인 골목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서촌은 고도 제한 등 각종 건축 규제에 묶여 있는데 이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특히 2010년 서울시의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 발표로 한옥 보존의 길이 열렸다. 한때는 시간이 멈춘 동네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서촌만의 고즈넉한 분위기로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다채로운 문화유산도 한몫했다. ‘북촌’이 조선 사대부들이 모여 산 곳이라면, ‘서촌’은 중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마을로 대대로 예술인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겸재 정선이 살던 ‘인곡정사’부터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이상의 생가, 화가 박노수 가옥 등도 이 근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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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개발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이른바 북촌 한옥마을에 대한 학습효과다. 북촌은 2001년부터 진행된 ‘한옥 가꾸기’ 사업으로 낙후된 가옥이 개선되는 효과도 있었지만, 임대료 상승으로 원래 거주민들과 예술가들은 밀려나야 했다.
통인동에서 개인 갤러리를 운영하는 류보형씨는 “몇 달새 점점 번잡해지는 분위기”라며 “작가들 사이에서 ‘여기도 떠나야 할 때가 됐나…’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통인시장 인근에서 15년간 살았다는 가정주부 양모씨도 “원래 살던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큰 변화없이 발전하면 좋겠다”며 “마구잡이로 개발된다면 물가도 오르고 원주민들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올 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서울시는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해 최근 시행계획을 밝힌 서촌 마을재생사업의 방점을 ‘주민’ 두 글자에 찍었다. 서촌 일대 102만㎡를 대상으로 추진하는 마을 리모델링 프로젝트로, 주민 주도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기존 건물을 유지하면서 리모델링을 진행하되 거주민들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서촌을 몸집만 큰 아이가 아닌 실질적으로 건강한 아이로 키울 생각”이라며 “관광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것인 아닌 주민들을 위한 마을 재생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