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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사랑했던 여자와 헤어졌다. 사소한 말다툼 탓이었다. 같은 상황을 다시 겪는다고 치자. 만약 남자가 그때 참았더라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별무리’는 이 만약의 상황을 무대에 펼친다. 가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번엔 여자가 참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한 상황에 많게는 3~4개의 다른 상황이 물린다. 종소리와 함께 50번의 암전. ‘마법’이 시작된다.
형식에 주목해야 하는 공연이다. 무대 위 빛이 꺼졌다 켜질 때마다 같은 상황 속 전개가 조금씩 바뀌며 새로움을 준다. 장면 전환이 이뤄지는 50번이 모두 다른 우주인 셈이다. 힘든 건 배우들이다. 몇분 단위로 상황이 변해 감정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바로 또 다른 나를 연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대본도 낯설었다. 데이트를 마친 남녀가 문 앞에 서 있다. 여자가 말한다. “더는 진도가 안 나갔으면 해요.” 이후 바뀌는 상황에 따라 뒤이어지는 다음 대사가 계속 바뀌는 식이다. 극중 양봉업자 롤란드를 연기하는 최광일은 “대본을 받았을 때 한 장을 여러 장 복사해서 준 줄 알고 당황했다”며 웃었다. 대신 2인극 특성상 배우들이 돋보인다. 천체물리학자 마리안 역을 맡은 주인영은 최광일과 자연스럽게 무대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