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다시 부르는 연광철 "30년 성악 인생 후회 없어"

내달 4일 마포문화재단 'M 연가곡 시리즈' 출연
2001년 30대 때 처음 부른 슈베르트 연가곡
50대가 된 지금, 젊은 시절 회상하며 무대 준비
"기회만 된다면 지역 구석구석 찾아가고 싶어"
  • 등록 2024-11-25 오전 5:45:00

    수정 2024-11-25 오전 5:45: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베이스 연광철(59)은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 대표 성악가다. 그는 1991년부터 독일에서 유학하며 오페라의 본고장 유럽 무대를 향한 꿈을 키웠다. 1993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갔다. 독일을 중심으로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하며 성악가로 남 부럽지 않은 경력을 쌓아왔다.

베이스 연광철이 19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광철은 오는 12월 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M 연가곡 시리즈’로 공연한다. (사진=마포아트센터)
그런 연광철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콩쿠르 우승 이후 오페라 가수로 활동을 시작한 30대 무렵이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지금보다 더 심하던 때였다. 그때 연광철이 만난 작품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連歌曲, 내용이나 특성 면에서 서로 관련 있는 곡들을 하나로 묶은 가곡집) ‘겨울 나그네’다. 서른여섯 살이었던 2001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이 곡을 불렀다.

오페라 전문 가수가 들려줄 색다른 가곡 무대

베이스 연광철이 19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광철은 오는 12월 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M 연가곡 시리즈’로 공연한다. (사진=마포아트센터)
“독일에서 10년 정도 살았을 뿐이었던 제가 독일어로 된 24곡의 가곡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을지 부담이 컸습니다.” 최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연광철은 ‘겨울 나그네’를 처음 불렀던 2001년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 사랑에 실패한 젊은이가 겨울밤 길을 떠나 아무도 듣지 않는 연주를 홀로 이어가는 거리의 악사를 만나기까지의 쓸쓸한 심경을 담고 있다. 그는 “30대 때 ‘겨울 나그네’를 처음 부를 때는 작품 속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었다”고 했다. 타지에서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우던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겨울 나그네’ 속 주인공의 고독은 누구보다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2001년 이후 연광철은 틈틈이 ‘겨울 나그네’를 불렀다. 나이가 들수록 작품에 임하는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50대를 넘어선 연광철은 다음달 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또 한 번 ‘겨울 나그네’를 부른다. 마포문화재단 기획공연 ‘M 연가곡 시리즈’를 통해서다. 그는 “50대가 된 지금은 제3자의 입장에서 ‘겨울 나그네’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베이스 연광철이 19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광철은 오는 12월 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M 연가곡 시리즈’로 공연한다. (사진=마포아트센터)
사실 연광철의 전공 분야는 따로 있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바그너 스페셜리스트’. 연광철은 바그너 오페라를 선보이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1996년 데뷔한 뒤 150회가 넘게 바그너 오페라를 공연했다. 그런 연광철이 오페라가 아닌 정통 가곡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점도 이번 공연의 색다른 점이다.

연광철은 오페라를 통해 쌓아온 캐릭터 이해력을 바탕으로 더 깊이 있고 원숙한 ‘겨울 나그네’를 선보일 예정이다. 연광철은 “‘겨울 나그네’를 처음 불렀을 때는 이 곡의 뉘앙스를 어떻게 살려야 할지, 시적인 요소를 어떻게 하면 관객이 공감할 수 있을지를 주로 고민했다”며 “이제는 오페라를 통해 많은 캐릭터를 연구하고 표현해 온 만큼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마음으로 노래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연광철은 ‘겨울 나그네’가 ‘물의 철학’으로 대변되는 노자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는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젊은 세대와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작은 희망이 모이면 큰 희망이 된다는 것, 처음부터 원대한 희망을 품으면 열정도 너무 빨리 식는다는 이야기를 해준다”며 “‘겨울 나그네’의 주인공도 사랑에 대한 너무 큰 욕망으로 절망하다 무소유를 향한 길을 떠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뒤늦게 성악 시작, 세계적 가수로…“늘 새로운 무대 고민”

베이스 연광철이 19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광철은 오는 12월 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M 연가곡 시리즈’로 공연한다. (사진=마포아트센터)
충북 충주 출신인 연광철은 공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성악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뒤늦게 성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자가 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음악 인생은 그를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의 길로 이끌었다.

30여 년의 음악 인생에 대해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게 성악밖에 없었다”는 생각에서다. 연광철은 “키 작은 동양인으로 서양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할 때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한국 사람이지만 서양 문화도 충분히 잘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새로운 무대를 고민하며 지금까지 왔다.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공연은 지자체 문화재단 기획으로 일반 관객은 물론 지역 주민을 위해 마련됐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연광철은 “베를린에서 ‘겨울 나그네’를 처음 공연한 곳도 200석 정도의 작은 공연장이었다”며 “한국에서도 2~3년 정도 일찍 공연 제안을 해준다면 서울은 물론 지역 구석구석에 있는 공연장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런 무대를 많이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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