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치안 총력도 무색…시민들 "나홀로 등산도 불안"

신림동 이번엔 대낮 공원 인근서 성폭행
대규모 경찰 인력 투입에도 범죄 방지 못해
시민들 불안…"신림동 우범 지역으로 각인"
  • 등록 2023-08-21 오전 6:56:00

    수정 2023-08-21 오전 6:56:00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잇따른 흉기난동 사건으로 경찰이 사상 처음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며 범죄 예방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서울 대낮에 흉악 범죄가 또 발생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30대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신림동 묻지마 흉기난동이 발생한 지 불과 한 달 만으로, 경찰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의 피의자 최모씨가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관악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신림동 등산로에서 여성을 성폭행하고 때려 숨지게 한 피의자 최모(30)씨의 혐의를 강간상해에서 강간살인으로 변경했다. 피해 여성이 사건이 발생한 지난 17일 의식불명 상태로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왔지만 19일 오후 3시40분쯤 사망한 데 따른 것이다. 양형기준에 따르면 강간살인죄는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씨는 앞서 17일 오전 11시 40분쯤 신림동에 있는 공원 인근 등산로에서 여성을 너클(손가락에 끼우는 금속 재질의 둔기)로 무자비하게 때리고 성폭행했다. 경찰은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를 들은 등산객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해 낮 12시 10분 최씨를 체포했다.

최씨는 피해 여성과 일면식이 없는 관계로 파악됐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등산로를 걷다가 피해자를 보고 강간하려고 뒤따라가 범행했다. 강간이 목적이었고 죽일 생각은 없었다”며 “신림동 공원 인근을 자주 다녀 폐쇄회로(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최씨는 범행에 사용한 너클을 지난 4월 인터넷에서 직접 구매하고 범행 두 시간 전부터 인근을 배회하는 등 사전에 계획한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18일 오후 지난 17일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 야산 현장(왼쪽)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같은 지역에서 흉악범죄가 발생한 것이라 충격을 더했다. 최씨의 성폭행 장소는 흉기난동이 발생한 장소와 불과 2km 떨어져 있었다.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후 대규모 인력을 투입했던 경찰의 ‘물량 공세식’ 대책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앞서 경찰은 신림동 흉기난동 이후 유사한 살인예고가 잇따르자 지난 3일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도심 곳곳에 장갑차와 경찰특공대를 배치했다. 다중밀집지역 3329곳에는 하루 평균 1만2704명의 경찰관을 투입했다. 신림동의 경우 지난 8일 민·관·경이 합동 순찰까지 진행하며 시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철통 경계에도 범죄를 방지하지 못했다.

시민들은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재등장에 불안감이 커졌다. 특히 신림역 인근 상인들은 흉기난동 이후 또다시 타격을 받을까 노심초사했다. 길거리 노점을 운영하는 이모(64)씨는 “(신림동에 대해) 하도 안 좋은 기사가 많이 나가 사람들 발길이 뚝 끊겼다”며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대학생 때 상경한 뒤 줄곧 신림동에 거주해온 강모(30)씨는 “사람들 머릿속에 신림동은 치안이 불안한 지역으로 각인된 것 같다”며 “부모님께서도 신림동 성폭행 뉴스를 보시곤 안부 차 연락을 하셨다”고 말했다.

신림역에서 만난 김모(56)씨는 “이곳이 옛날에는 술 먹고 치고받고 싸우는 정도였는데 최근에 험악한 일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두렵기도 하고, 행색이 이상한 사람이 어슬렁거리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고 전했다.

성폭행 사건이 관악산 등산로 인근에서 발생한 탓에 당분간 나홀로 등산을 자제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이모(28)씨는 “집 근처 북악산길을 혼자 오른 적이 있는데 그게 위험하다는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됐다”며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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