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왜 최종건을 '외교부 2인자'로 보냈을까

최연소·非외교관 출신 첫 외교부 1차관
"너무 커진 대미 의존도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
첫 출근길 "한미 워킹그룹, 들여다 보겠다"
  • 등록 2020-08-22 오전 6:00:00

    수정 2020-08-22 오전 6:00:00

최종건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이 지난해 9월 19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제74차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해장은 햄버거로 해요.”

2014년 8월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최종건 당시 연세대 교수가 한 말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 발언 전후에 한미동맹에 대한 비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발언이 미국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국익에서 비롯된 것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나온 농담인 셈이다.

그가 바라본 한국 외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커진 대미 의존도다.

중국이 한국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는데 이를 위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한미 동맹은?”이라는 질문이 나온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고 해도 “한미 동맹은?”이라는 질문이 나온다. 독도 문제 등을 놓고 일본과 한판 붙으려고 해도 “한미 동맹은?”이라는 질문이 나온다. 전시작전권 환수 등 안보 주권을 되찾으려고 해도 “한미 동맹은?”이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는 “한미 동맹을 너무 의무화해 의존한 나머지, 우리는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며 “이 안에서는 우리는 한·미·일 동맹의 하부가 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중국과의 관계가 얽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일도양단의 프레임 안돼”…외교부 일성

우리나라 외교정책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던 교수는 6년 후 외교부 2인자가 됐다. 40대 최연소 차관, 비(非)외교관 출신으로서는 처음이다.

최 차관은 18일 외교부 직원에게 전하는 일성(一聲)으로 “더이상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희생만을 강요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익을 제약하는 여러 난제를 풀어내는 작업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일도양단의 프레임에 의해 외교적 상상력과 혁신이 제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가 말하는 ‘일도양단의 프레임’이란 정부의 정책에 “한미동맹은?”이라는 반문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외교 관계자는 “취임 첫날부터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부에 대해 엄포를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차관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기획비서관에서 외교부로 자리를 옮겼다.

문재인캠프에서부터 한반도안보 신성장 추진단장을 맡아 외교·안보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이후 2017년 7월 평화군비통제비서관에 선임됐다. 이후 청와대 국가안보실 개각이 있었지만, 오히려 최 차관은 오히려 역할을 확대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최 차관의 정치 입문 배경으로서는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가 지목된다. 최 차관은 문 특보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최 차관 본인 역시 달변가에, 정치적인 성향도 뚜렷한 탓에 교수 시절부터 폴리페서(현실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학교수)로서 활동해왔지만, 문 특보의 인맥 역시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치권 인사는 “정의당 자문단에 들어갈 때, 문 특보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문 특보는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친분이 깊은 사이다.

문 특보는 문재인정권 외교·안보·대북정책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이는 이론뿐만 아니라 인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 차관을 비롯해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을 일컬어 ‘연정라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논쟁하고 싶진 않은데…”

최 차관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한 교수 시절과는 달리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로는 극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해왔다.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나 청와대 관련 기사를 링크·인용하는 방식으로 관심사와 주장을 시사했을 뿐이다.

다만 일본이 수출 규제에 대한 대응조치로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리면서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자, 2년여 만에 방송사 출연을 통해 반박 인터뷰를 하는 등 ‘공격수’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2019년 7월에는 미국 애스펀 안보포럼에 참여했다. 당시 패널 중 한 명이었던 수미 테리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이 싱가포르회담, 판문점 선언 등은 김정은의 이미지를 “정상국가의 보통사람”으로 보여주는 쇼였을 뿐이라고 비판하자, “논쟁을 하고 싶지 않은데…”라고 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이는 한반도에 고조되던 군사적 긴장감을 완화하는 성과를 가져왔다고 반박했다.

최 차관으로부터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동북아 정세를 국제 이론을 통해 풀어주셔서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가끔 학생과 논쟁이 붙기도 했는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학생은 더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최 차관은 전통적으로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외교부의 중심에서 문재인정부의 적극적인 대북 정책의 외풍을 차단할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다. 제1 관문은 바로 한미 워킹그룹이다.

문재인정부 핵심 인사들은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위해서는 한미 워킹그룹의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8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워킹그룹에서 논의할 것과 우리 스스로 할 것을 구분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게 기본입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리스 대사는 “한미 워킹그룹은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며 입장 차를 드러냈다.

같은 날 공식적인 첫 출근을 한 최 차관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여권에서 해체 주장이 나오는 한미 워킹그룹에 대한 방침을 묻자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없앨 것이냐’는 질문에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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