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脫 'IOE' 바람...애국마케팅의 명과 암

[비즈니스X파일]①애국마케팅의 명과 암
경제가 어려울때나 국제 스포츠 행사때 도움
지나치면 장벽 만들어 혁신기업 장애물 되기도
전문가들 "정부 강요 안되고 기업 스스로 판단해야"
  • 등록 2015-03-20 오전 12:25:33

    수정 2015-03-20 오전 9:06:58

[이데일리 김현아 김관용 기자] 중국정부가 탈 외산을 의미하는 “去(취) IOE(IBM, Oracle, EMC)’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국의 자료(데이터베이스) 관리는 미국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대한민국 소프트웨어(SW)에는 기회죠.”

나라 꽃 무궁화
미래창조과학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국내 데이터베이스(DB)기업의 시장이 넓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얼마 전 국산 DB 소프트웨어업체인 티맥스소프트는 중국 정보기술(IT) 업체인 랑차오(浪潮·인스퍼)의 서버에 자사 DB 제품인 ‘티베로’를 탑재해 현지에 공급하기로 했다. 만리장성을 넘은 대한민국 SW의 위상을 보여준 것이다.

“아랍에미리트 같은 나라에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어 지원이 가능한 워드(한글과컴퓨터, 인프라웨어)를 2개나 가진 한국을 부러워해요.” 미래부 관계자의 말이다.

이처럼 중국이나 아랍에서 대한민국 SW에 관심갖는 것은 ‘애국’이란 관점과 다르지 않다. 이는 나라의 중요자산인 정보를 외국계 SW에, 특히 미국계 SW에 맡겼다가 혹시 모를 백도어에 국가 중요 정보가 유출되거나 자국 통제 하에 두지 못할 수 있다는 의심 때문으로 보인다.

‘애국’이라는 키워드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이미 한류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 기업의 글로벌 비즈니스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입주 칭화대학교 교수, 서강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원장, 양예 하얼빈 공정대 부총장, 장인수 티맥스소프트 사장 등이 지난 2013년 하얼빈에서 열린 한중 DB기술 협력 포럼 이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애국 마케팅은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나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는 도움이 됐다. 지금은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전체 인구수를 뛰어넘었지만, 88서울올림픽 때까지 만해도 모토로라가 만든 무전기 만한 휴대폰(다이나택8000X 모델)이 대세였다.

하지만 삼성전자 애니콜이 ‘한국지형에 강하다’란 슬로건으로 당시 1위였던 외국산 휴대폰의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1995년 7월 시장점유율 52%로 우뚝 섰고, 이후 갤럭시S시리즈의 성공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글로벌 기업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1995년 삼성전자가 낸 신문광고
당시 SK텔레콤은 ‘대한민국 통신채널 스피드 011’이란 슬로건으로 국가와 이동전화의 이미지를 연결해 성공하기도 했다. 1997년 2월 이동전화 브랜드 ‘디지털011’을 ‘스피드011’로 바꾼 것이다. 번호마케팅은 2004년 1월 1일부터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될 때까지 이어졌다 .

△1997년 스피드011 로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공식 후원업체가 아니었음에도 SK텔레콤은 ‘대한민국 박수(대한민국 짝짝짝짝짝)’를성공시켰다. 붉은 악마의 역동적 이미지는 SK텔레콤에 그대로 오버랩 돼 기업 인지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2014년 브라질 올림픽때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후원사 겸 브라질 월드컵 공식 파트너사로 활동한 현대차그룹. 경기장 광고판으로 브랜드를 노출하는 글로벌 축구 마케팅외에도 붉은악마 및 다음커뮤니케이션(035720)과 함께 ‘2014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 승리기원 슬로건’을 공모해 애국 마케팅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3년 5월 현대차는 포털 다음과 함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국가대표 응원 슬로건’ 공모에 나섰다.
하지만 ‘애국’ 마케팅이 반드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한글과컴퓨터는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당할 뻔 했지만, 한글 지키기 운동본부(회장 이민화 당시 메디슨 회장)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다.

운동본부가 100억원 규모 투자 제안을 해와 MS와의 투자유치 협상을 중단하고 운동본부와 공동으로 SW 정품 사용운동 및 100만 회원가입 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한컴은 이찬진 사장이 물러난 뒤 대주주가 수차례 바뀌고 기업사냥 대상이 되는 등 브랜드 가치가 손상되는 아픔을 겪었다.

무엇보다 한컴 오피스가 정부나 공공 문서의 사실상의 표준이 되면서 다른 혁신적인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인프라웨어를 보면 휴대폰에서 쓰는 모바일 오피스 제품 ‘폴라리스 오피스’는 승승장구하지만, PC 버전에선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애국심’으로 시작된 한컴 독점화 현상 때문이다.

인프라웨어가 PC용 오피스인 ‘폴라리스 워드 2015(Polaris Word 2015)’의 공공조달 등록을 이달 완료했다. 폴라리스 워드 2015는 HWP, DOC, PDF 뿐 아니라 국제표준인 ODF(Open Document Format]) 등 다양한 문서 형식을 지원한다. 세계각국과 우리 정부는 한컴 오프스 등 특정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국제표준인 ODF를 공공문서의 표준으로 정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최근 정부가 광복 70주년인 올해 대대적인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행정자치부를 비롯해 교육부·미래창조과학부·국토교통부·인사혁신처 등 10개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데, 방송사와 기업 등에 협조를 구해 태극기 달기 운동을 홍보하고 고객 사은품으로 태극기를 나눠줄 것을 권장하는 안도 있다.

장기 불황과 각종 테러에 놀란 국민 마음속에 ‘애국심’이 다시 되 살아 나는 분위기도 있지만, 독재로 상징되는 권위주의 국가였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찮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와 영자가 부부싸움 도중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국제시장 공식 페이스북
김규동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한다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 내셔널리즘을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며 “IMF 때처럼 국민의 단결력을 북돋울 수 있는 마케팅을 할 수도 있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디어경영학회장)는 “지도자들은 공동체 의식 고취를 위해 기업들에 애국 마케팅을 요구할 수 있겠지만, 이는 시민단체나 사용자집단에서 시작돼야 하는 것이지 관 주도로 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국내 시장은 자급자족이 안 되는 시장인데, 한류에 애국심 고취 내용을 넣으면 중국과 일본이 가만히 있겠느냐?”면서 “삼성은 글로벌 플레이어이고, KT 역시 로컬 기업 성격이 강하지만 해외 사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도한 애국심 고취 요구는 반한류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도태 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애국 마케팅은 산업 기술력이 부족한 경우나 정치 안정을 위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그는 “애국 마케팅이 지나치면 역효과가 있다”면서도 “우리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견인하는 측면이나 여야간 경쟁성 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분법적 재단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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