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그룹 구조조정 복병되나

[이데일리 김세형 기자]국민연금이 대기업집단의 구조조정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반대를 뜻하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 굴욕을 맛봤던 주주총회와는 달리 가진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어서다.

당장 삼성SDI(006400)와 제일모직 합병이 그 시험대가 되고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등 여러 가지 지배구조개편과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돌고 있어 어느 곳이든 상당한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의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지난달 말 합병을 결의하면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주식매수청구금액이 각각 7500억원, 7000억원을 넘을 경우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주식매수청구금액이 이를 넘더라도 곧장 취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무적 부담과 함께 평판 악화를 각오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최근 기준으로 삼성SDI와 제일모직에서 각각 9.85%(464만4826주), 10.09%(528만9266주)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 전부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을 때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각각 7044억원과 3558억원을 국민연금에 지급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성SDI의 경우 사실상 국민연금 한 곳만의 반대로도 합병계약이 무산될 수도 있다. 제일모직 역시 국민연금이 반대했다는 소식이 알려질 경우 여타 주주의 동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실제 지난해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의 분할합병에서 현대하이스코 주가가 매수청구행사가액을 5% 넘게 밑돌자 보유지주식중 40% 가량인 198만주(공시 기준)에 매수 청구했다. 현대하이스코는 이를 포함해 전체 지분의 7.7%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가 들어오는 바람에 외부에서 1500억원의 자금을 빌어 와야했다.

삼성SDI와 제일모직 합병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최근 들어 부쩍 계열사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고 3세 승계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평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물산(000830)의 삼성엔지니어링 합병과 함께 심지어 삼성전자(005930) 분할설까지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연금과 번번이 부딪칠 수 밖에 없다.

비단 삼성그룹 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민연금이 대기업치고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기업들의 사업구조 개편에 주도권을 행사할 수는 없어도 통과해야할 관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주주총회에서라면 몰라도 주식매수청구가 걸린 사안이라면 국민연금에게 이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으로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주가 추이와 장기 주주가치 제고 등을 감안해 결정을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일인 5월30일 전에 서면으로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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