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았나. 미국이 유럽 열강에게 휘둘렸던 옛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섰지만 또다시 세계와의 단절을 열망하는 모습이다. 미국은 자국 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밀리자 이들을 돕기 위해 해외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보호무역정책을 펼칠 태세다.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일자리를 없앴다며 통상정책을 전부 뜯어고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보편타당한 세계관과 경제논리를 갖춘 인물로 알려진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마저 기존 무역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대선공약을 확정했다. 보호무역주의의 거대한 먹구름이 시나브로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 석학 폴 케네디는 저서 ‘21세기 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자유주의가 시장 메커니즘과 개방정책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지만 특정 국가의 이기적 행태로 자유주의 질서가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외치며 세계화를 이끌어온 국가가 미국이다. 특히 공화당은 자유시장의 최대 옹호자다. 미국은 교역국이 자유무역에 따른 시장개방에 미온적일 때 ‘슈퍼 301조’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휘두르며 일방적인 보복조치를 취해왔다. 그런 미국이 이제는 ‘FTA는 재앙’ 운운하며 자유무역을 폄훼하는 모습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성을 보인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나 한번 솔직해 보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방향착오라고 말이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와 미국의 신(新)고립주의는 자국 이기주의의 구차한 명분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거짓순수’(pseudoinnocence)에 불과하다. 두 나라의 논리는 모든 이의 공감을 사기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됐다는 얘기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 경제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는 제4차산업혁명 시대에 국경을 닫어걸고 보호무역주의 깃발을 내걸은 모습은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가는 퇴행적 행태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