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美도 인수합병 1건당 주주대표소송 최대 5건…韓 상법개정 우려

한경협, 美 M&A 주주대표소송과 이사충실의무 보고서
이사 면책범위 폭넓게 인정한 미국도 소송에 몸살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적용시 기업 가치하락 우려"
  • 등록 2024-11-04 오전 6:00:00

    수정 2024-11-04 오후 7:04:27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기업 친화적인 미국에서도 인수합병 건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우리 국회에는 이사에게 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 중인데, 상법 개정으로 기업들이 소송에 몸살을 앓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 체계에 전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사 면책 넓은 미국도 소송 남발에 몸살

4일 한국경제인협회는 ‘미국 인수합병(M&A) 주주대표소송과 이사충실의무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미국 회사법과 판례, M&A 관련 소송을 분석하고 영미법계의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한국 상법에 무리하게 도입했을 때 기업이 입게 될 피해를 점검했다.

자료=한경협
미국은 회사가 M&A 계획을 발표하면 해당 거래에서 이사가 신인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대표소송이 자동적으로 제기된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간 미국 상장회사 인수합병 거래를 분석한 결과 매년 인수합병 거래의 71~94%가 주주대표소송을 당했다. 주주 간 이해득실 계산도 달라 기업들은 인수합병 거래 1건 당 평균 3~5건의 주주대표소송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통상 인수합병 계획이 발표되면, 일부 주주가 공시 정보 부족이나 중요 사항 누락 등을 이유로 이사 신인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다. 이후 회사와 원고는 ‘단순 추가공시’나 ‘합병 대가 상향 조정’ 정도로 화해(Settled)하거나 소를 취하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때 회사는 인수합병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원고 측 변호사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일종의 인수합병 거래세가 되고 있다. 변호사의 수익모델로 인수합병이 변질된 셈이다.

미국에서 인수합병 관련 주주대표소송 비율은 2013년 최고 94%였다가 2016년에 71%로 크게 하락했다. 이는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델라웨어주 법원의 판결(트룰리아 판결) 때문이다. 트룰리아 판결 이후 인수합병 관련 주주대표소송 건수 대비 화해 비중은 2009년 81%에서 2018년 8%로 급감한 반면, 원고의 자발적 소송 취하 비중은 2016년 50%, 2017년에는 72%까지 늘었다. 자발적 소송 취하 역시 회사가 원고측 변호사에 소송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비용 부담은 여전하다. 트룰리아 판결 영향으로 델라웨어주 법원에 제기되는 소송은 줄어든 반면, 연방법원 등 타지역에서의 인수합병 관련 소송이 대폭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자료=한경협
실제 미국내 인수합병 관련 주주대표소송의 26%(2009∼2015년 평균) 정도가 연방법원에 제기됐는데, 트룰리아 판결 직후인 2018년에는 91%로 급증했다. 한경협은 이를 주주대표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소송에 유리한 지역을 찾아 법원을 쇼핑하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미국식 韓 상법개정, 법 체계 맞지 않아”

미국은 인수합병 관련 주주대표소송이 빈발하기는 하지만,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통해 이사의 책임을 제한 또는 면책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송 과정에서 이사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다. 경영판단원칙뿐만 아니라 델라웨어주 회사법에는 이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조항도 있다. 이사가 고의적으로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사익을 취한 것이 아니라면, 회사 정관을 통해 이사의 경영책임을 포괄적으로 면제해 주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은 경영판단원칙과 정관을 통해 이사의 면책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지만, M&A과정에서 남발되는 소송은 막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한경협은 한국 상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 상법에도 이사 책임 면제 조항(제400조제1항)이 있지만, 주주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주주 수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대규모 상장회사에는 적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조항이라는 지적이다. 이사의 경영판단에 대한 형법상의 배임죄 적용도 기업인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면 이사에 대한 주주대표소송뿐만 아니라 배임죄 고발도 빈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민법상의 위임계약에 근거해 이사의 책임 범위를 설정한 우리 상법에 미국식 이사 신인의무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법 체계에 전혀 맞지 않다”며 “주주에게 별다른 이익도 없고 기업들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가치 하락의 우려가 큰 만큼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는 상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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