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에는 민족의 역사와 뿌리가 담겨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듯이 수천, 수백년을 이어져 내려온 문화재는 우리 후손들이 잘 가꾸고 보존해 나가야 할 소중한 유산이죠. 문화재는 어렵고 고루한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 쉽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는 문화재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최근 김포 장릉 역사문화관이 체험형 전시실로 개편해 새롭게 문을 열었어요. 장릉은 인조(재위 1623~1649)의 부모인 추존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 구씨(1578~1626)의 능인데요. 반정(1623)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자신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부모를 추존(사후에 왕이나 왕비의 지위를 주는 것)했어요.
왕족 신분으로 세상을 떠난 부모의 묘였던 ‘흥경원’을 ‘장릉’으로 승격시켰고, 왕릉의 형태도 새롭게 조성했죠. 이러한 이유로 김포 장릉은 왕족의 무덤 형태인 ‘원’과 ‘왕릉’(능)의 특징이 함께 나타나는 곳이에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능’과 ‘원’, 그리고 ‘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조선왕릉 영릉(사진=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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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무덤은 무덤 속 주인공의 신분에 따라 ‘능-원-묘’로 구분을 해요.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무덤, 묘는 능과 원에 해당되지 않는 사대부와 일반 서민의 무덤을 지칭합니다. 신분 사회가 뚜렷했던 과거에는 죽은 뒤에도 신분에 따라 차이를 두고 묘를 조성했던 거죠.
능·원·묘의 형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능은 산을 등지고 아래쪽에 동,서,북 3면으로 곡장(담장)을 두릅니다. 또 능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돌호랑이’ 4기와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의 ‘돌양’ 4기가 호위하는 형상으로 위치하고 있어요. 특히 무인석의 경우 왕릉에서만 볼 수 있는데, 이는 왕이 군사를 거느릴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원은 망주석 한쌍을 비롯해 석호와 석양이 각 한쌍씩 있고 정자각과 비각(표석), 수라간, 수복방, 재실 등을 갖추고 있어요. 묘에는 혼유석과 장명등이 있고 제향 공간은 따로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조선 시대 능·원·묘는 사적지로 지정된 조선왕릉 40기, 원 14기, 묘 64기가 있어요. 특히 조선의 27대 왕과 왕비의 무덤인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조선왕릉이 중요한 장례전통을 간직하고 있고, 동아시아 무덤 건축 발전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죠. 제릉과 후릉까지 포함하면 총 42기이지만, 이들 능은 현재 북한에 위치해 있어요. 그리고 폐위되어 임금의 능이 아닌 왕자의 묘가 된 연산군묘와 광해군묘도 세계유산에서는 제외됐죠.
조선 왕릉에는 세종(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 심씨(1395∼1446)를 모신 영릉, 조선 20대 왕 경종(재위 1720~1724)과 그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1705~1730)의 능인 서울 의릉 등이 있어요. 구리시에 위치한 동구릉에는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능’이 있습니다. 1408년부터 19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몸을 해치는 나쁜 기운)로부터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어요.
왕릉은 보통 뛰어난 자연경관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쪽에 물이 있고 뒤로는 언덕에 의해 보호되는 배산임수의 터에 있고, 멀리 산들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자리를 선택해 마련됐어요. 왕릉에는 매장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어요. T자형의 목조 제실, 비각, 왕실 주방, 수호군의 집, 홍살문, 무덤지기인 보인의 집 등 필수적인 부속 건물이 있죠. 조선왕릉은 5000년에 걸친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 서울 의릉(사진=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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