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판결]“스펀지로도 때리지 마라" 상처 없어도 정서학대

스펀지로 4세 아이 때린 어린이집 원장에 벌금형 선고
신체 손상 없지만 정서적 학대…"훈육 아닌 사적인 감정"
서울변회 “훈육 명분으로 정서적 학대 했는지 돌아봐야”
  • 등록 2015-10-19 오전 5:00:00

    수정 2015-10-19 오전 5:00:00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지난해 1월 22일 오전 11시. 남양주시 소재 한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와 어린이들이 다음날 열릴 재롱잔치 연습에 한창이었다. 연습을 지켜보던 원장 A씨(57)는 아이들이 보육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자 빨간색 천으로 싼 스펀지로 B군(당시 4세)의 머리를 한 대 때렸다.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는 듯 했던 사건은 당시 상황이 CCTV에 고스란히 녹화되면서 발각됐다. 검찰은 A원장을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A원장은 “재롱잔치 연습 도중 질서유지를 위한 훈육이었다”며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가볍게 피해 아동의 머리를 한 대 친 것에 불과할 뿐 아동을 (정서적으로)학대할 의도로 할 행위가 결코 아니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1심(2014고단2594)을 맡은 의정부지법은 A원장의 행위로 B군이 상처를 입거나 신체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원장이 물건을 사용해 28개월에 불과한 아동의 머리를 상당한 세기로 때린 것은 아동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행위에 해당한다”며 “폭행 경위와 부위, 피해아동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범행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에 불복한 A원장은 항소했으나 판결은 달라지지 않았다. 2심(2015노492)을 심리한 의정부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은택)는 무려 7가지 이유를 들어 A원장이 행위를 훈육이 아닌 정서적 학대로 판단했는지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A원장은 당시 재롱잔치를 직접 지도한 것이 아니라 참관 과정에서 B군을 때렸다”며 “사회통념상 훈육을 위한 적정한 방법이나 수단의 한계를 넘어섰고 다음날 열릴 재롱잔치에서 학부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한 사적인 감정이 앞섰다고 볼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 “정서적 학대는 눈앞에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실제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결과를 초래할 위험 내지 가능성이 발생하면 정서적 학대 구성요건을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동복지법 제17조 5호는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아동에 대한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겼을 때는 같은 법 제71조 1항 2호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서울변회와 이데일리가 뽑은 이달의 판결’ 선정 자문위원인 정혜선 변호사(36·사법연수원 36기)는 “언론에서 주로 다루고 관심을 갖는 학대행위는 대부분 심각한 신체적 학대”라며 “하지만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은 지금 눈앞에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으나 쌓일수록 아동의 정상적인 발달을 막는 정서적 학대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른들이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정서적 학대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환기했으면 하는 생각에 이 판결을 선정했다”며 “나 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정당한 훈육이 아닌 화난 감정이 앞서 A원장과 같은 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되새겨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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