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진 전(前)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21세기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어느 탈북민은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으면 북한독재 정권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통일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이 1만명은 돼야 하고 3만명 정도가 되면 북한 정권이 체제유지에 대한 미련을 버릴 것이라는 얘기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5년 5월말 기준으로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은 2만8000명을 넘어섰다. 2009년 2914명이 들어온 것을 정점으로 북한의 내부단속으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지만 지난해에도 1397명이 넘어왔다. ‘탈북민 3만명 시대’가 임박해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이달안에 3만명을 넘어설 공산이 크다.
탈북민들은 분단체제의 희생자들이다. 해방직후 소련군에 의해 강제이주된 스탈린식 독재체제에서 온갖 불행과 고통을 겪다가 사선을 넘어온 용감한 사람들이다. 미·소 냉전이 끝나고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북·중 접경지역이 열리면서 시작된 탈북민 행렬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남·북통합에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고(故) 황장엽 전 북한민주화위원장도 “우리가 탈북한 것은 개인의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한동포들의 지원을 받아 북한동포들을 구원하고 민족통일 위업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라며 탈북민들의 민족사적 소명을 강조했다.
요즘에는 의사, 약사, 박사 등 전문 분야에서 남한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들이 통일이 되면 북한에 들어가 북한 재건에 일조하고 싶다고 인터뷰하는 기사를 흔히 볼 수 있다. 북한의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그룹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모든 사회적 창조행위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 일어난다”고 갈파했다. 국내 입국한 탈북민들도 북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북한변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리더의 역량을 갖추고 북한변화에 필요한 자원들을 동원할 수 있을 때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입국 탈북민들을 북한재건 및 남북통합의 리더로 적절히 육성하는 방안을 놓고 정부와 민간부문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탈북민들을 분단 70년을 극복하는 자산으로 키워나가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얘기다.
특히 요즘 북한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급변사태 가능성이 높아져 통일준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갑자기 다가올 수 있는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남한 정착에 성공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시장경제 원리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북한이 개방될 경우 시장경제 전도사로 투입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서독은 통일직후인 1991년 1만 여명, 1992년 2만6000명의 공무원을 동독에 파견해 통합작업을 벌였으나 사전교육이 되어있지 않아 많은 혼란을 겪었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도 그동안 통일을 외치면서도 북한지역 재건과 체제전환을 도울 수 있는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일에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제 분단극복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탈북민이 북한에 시장경제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