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이데일리]정준양 회장, 침묵하는 이유

  • 등록 2013-11-11 오전 6:00:00

    수정 2013-11-11 오후 5:29:49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정치적 외압이나 외풍에 의한 사임은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새 인물이 새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거취문제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말이 아니다. 2009년 1월 15일 포스코 이사회에서 스스로 회장직을 물러나겠다며 당시 이구택 회장이 했던 말이다. 물러나는 그의 고별사를 순순히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구택 전 회장은 당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도 낙마했다. 포스코는 2000년 10월 민영화됐지만, 정권 교체 시기마다 회장 인사와 관련한 외압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김대중 정권 때는 김만제 회장이, 노무현 정권 때는 유상부 회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이번에도 전례가 재현될 조짐이다. 정준양 회장이 굳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외풍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최근 이석채 KT 회장이 사퇴를 결정하면서 이제 불똥은 포스코로 튀는 모양새다. 정 회장의 임기는 2015년 3월까지로 1년 4개월 가량 남았지만, 내달 열리는 올해 마지막 이사회에서 사임 의사를 밝힌 뒤 내년 초 정기 주주총회를 전후해서 퇴진할 것이란 소문이 정해진 각본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사실 정 회장을 두고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부터 여러가지 얘기들이 나왔다. 정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순방(6월)과 베트남 국빈방문(9월)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잇따라 빠졌고, 이번 달 2∼8일 박 대통령의 유럽 방문에도 동행하지 못했다. 9월엔 국세청이 서울 포스코센터와 포항 본사, 광양제철소를 동시다발로 들쑤시면서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지난달 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세계철강협회 연차 총회에서 임기 2년의 세계철강협회장에 선임되면서 사퇴설은 수그러드는 듯 했지만, 이 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뒤 다시 점화되는 양상이다. 결국 정 회장은 최근 청와대에 “더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선 차기 회장 후보들의 이름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포스코 회장 자리가 흔들리는 건 선임과정에서 나타난 잡음이 불씨가 된 측면도 있다. 2009년 초 윤석만 전 포스코 사장이 유력한 회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과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은 ‘낙하산 인사’를 막아보자는데 뜻을 같이 했지만, 막판 내부 후보를 두고 의견이 갈렸고 결국 지금의 정 회장이 승기를 잡았다. 윤 전 사장은 당시 비공개로 열린 ‘포스코 CEO 추천위원회’에서 권력 실세들이 어떻게 포스코 회장 인사에 개입했는지 증언하기도 했지만 흐름을 바꾸진 못했다.

포스코는 독립경영을 위해 사내이사(5명)보다 많은 사외이사(6명)을 두고 있지만, 외풍을 막아내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정 회장이 입을 꾹 다문채 ‘명예 퇴진’을 위한 시기와 방법 등을 두고 깊게 고심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포스코가 독립경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 정 회장이 얼마나 ‘바람막이’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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