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림 ‘정찬승 상’(1975), 종이에 동판(A.P.작가소장용), 25×17㎝(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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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960년대 말 행위예술의 현장에는 늘 작가 정찬승(1942∼1994)이 있었다. 작가 김구림(87)·정강자(1942∼2017) 등과 행위예술단체인 ‘제4집단’을 결성(1970)해 다양한 ‘해프닝’과 더불어 한국 아방가르드미술을 주도했더랬다.
덕분에 그는 신문의 문화면보다 사회면에 더 자주 등장했는데. 풍기문란 등으로 번번이 ‘사건’이 된 그의 작품에는 ‘퇴폐’란 단어가 여지없이 붙어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사회저항’이라 우겼지만.
화끈한 그의 행보 중에는 김구림의 일터가 있던 건물의 다방에서 ‘김구림’을 긋고 공짜 커피를 마신 일도 포함된다. 그랬다. 정찬승과 김구림은 막역한 친구이자 ‘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맨 앞줄에 나란히 선 끈끈한 동지였다. 김구림이 16㎜ 필름으로 제작한, 한국 최초 실험영화라 불리는 ‘24분의 1초의 의미’(1969)에 선뜻 출연한 것도 정찬승이었으니.
장발에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긴 얼굴로 짐작될 만한 큰 키. ‘정찬승 상’(1975)은 김구림이 동판으로까지 찍어 기록한 정찬승의 뜨거운 30대 모습이다.
4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서 여는 기획전 ‘D폴더: 한국 근현대미술가들의 아카이브와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김달진 관장이 50여년 수집해온 한국근현대작가 335명의 작가별 아카이브인 ‘D폴더’를 꺼내놨다. 김구림을 포함해 고희동·이응노·한묵 등 작품 16점과 리플릿·사진·방명록 등 아카이브 70여점을 전시한다.
| 김구림 ‘24분의 1초의 의미’(1969), 단채널비디오·컬러·무음, 10분(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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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동의 ‘유천경유’(幽泉徑雨·1932), 종이에 수묵담채, 189×51㎝(왼쪽), 이응노의 ‘만이추성’(滿耳秋聲·1932), 종이에 수묵담채, 186×59㎝(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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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묵 ‘표지화’(1955. 12), ‘문학예술’ 제2권 제7호(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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