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착 붙는 드레스를 선호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왼쪽부터)와 LF 마에스트로로 추정하는 줄무늬슈트차림의 피아니스트 조성진. 짧은 단발이 트레이드마크인 피아니스트 유자왕은 10㎝ 힐에 미니스커트를 즐긴다(사진=크레디아·롯데콘서트홀·유자왕 공식 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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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꺄악!” “간지 난다.” “슈트발의 정석이다.” 지난 3일 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콘서트홀 로비.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무대의상을 벗고 스트라이프(줄) 무늬의 슈트를 입고 등장하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독주회를 끝낸 조성진이 고국팬을 위해 사인회를 연 자리다. ‘클래식계 아이돌’이란 별칭답게 이날 로비에만 800여명의 팬이 몰리는 진기록을 남겼다.
이번 사인회의 화룡점정은 조성진의 슈트발이다. 검은 색상의 연미복(턱시도) 대신 감색 바탕의 굵은 회색 스트라이프 정장 차림에 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이날 입은 조성진의 슈트는 평소에 볼 수 없던 것”이라며 “클래식하면서 자연스러운 어깨라인,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선이 돋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사인회에서 입기 위해 따로 챙긴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0월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 뒤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지 1년 3개월 만에 그의 성숙함을 볼 수 있던 의상이더라. 조성진의 재발견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고 말했다.
△조성진 입은 줄무늬정장 ‘브랜드’ 뭔가 보니…
조성진이 입은 줄무늬 의상에 이목이 쏠리면서 팬들 사이에선 ‘어디 브랜드냐’는 궁금증이 증폭했다. 이날 연주회 주최 측인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공연계 간혹 무대의상을 아티스트에게 제공하기도 하지만 이날 연주회와 사인회 의상은 조성진 소유로 알고 있다. 어디 브랜드의 옷인지는 모르겠다. 직접 챙겨 왔다”고 귀띔했다.
국내 대표 패션업계 3사에 물어본 결과
신세계(004170)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정장은 브랜드를 구별하기 가장 어려운 옷”이라면서도 “아르마니나 돌체앤가바나 등 수입 고가 브랜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성물산(028260) 패션부문(옛 제일모직) 디자이너는 “보통 남성 연주자는 통상적으로 무대 위 맞춤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피아니스트 경우엔 건반 위 팔과 어깨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보통 바르카라고 가슴 쪽 포켓 형태를 보고 브랜드를 파악하는데 우리 브랜드는 아니다. LF 브랜드 재킷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추정했다.
LF(093050)(옛 LG패션) 측은 “사진만으로 확신하긴 힘들지만 이날 조성진이 입은 슈트는 LF의 남성복 브랜드 마에스트로와 흡사하다”며 “이탈리아 순모 투버튼 정장이 유력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LF 마에스트로의 다크 네이비 울스트라이프 슈트. 지난해 나온 신제품으로 소비자가격은 99만원대다. LF 디자이너는 “이탈리아 슈트라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밀라노라인으로 영국식 슈트에 비해 몸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내려간 허리라인이 특징이다. 어깨라인도 매우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부드럽고 균형 잡힌 실루엣이 정교하게 닮았다”며 “착용감이 편안하고 깃 부위가 뒤로 넘어가는 현상방지 디테일이 맞춤복을 자주 입는 연주가가 입어도 불편함이 없는 정장”이라고 설명했다.
|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사인회장에서 입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LF의 남성복 마에스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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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는 1986년 출시해 30년 동안 국내 신사복시장에서 정상을 지켜온 브랜드다.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혹은 거장이란 뜻이 담겨있다. 이 브랜드에선 이탈리안 슈트와 비즈니스 캐주얼 의류를 선보이는 데 나폴리의 핸드크래프트 기술과 전통적인 제작방식을 따른다고 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 의상을 제작·협찬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의 이동진·차인표 슈트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 측은 “워낙 정장은 외관상으로 브랜드를 구분짓기 힘들다. 파리에 체류한 지 5년째인 만큼 즐겨찾는 숍에서 맞춰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유자왕 킬힐·손열음 편안함…연미복 벗고 실용·개성 입다
무대의상은 곧 연주와 직결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디자이너는 “연주자에게 무대의상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음악의 완성을 돕는 ‘전략’이자 ‘무기’다. 무엇보다 실용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 피아니스트 유자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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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연주자들이 즐겨입는 의상을 보면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는 몸에 달라붙는 드레스를 즐겨 입는 편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의상의 경우 악기를 올려놓는 어깨와 목 주변, 활을 긋는 팔의 움직임에 방해되는 요소를 없애는 것이 관건. 이에 신지아는 물론 173㎝ 큰 키의 클라라 주미강 역시 ‘홀터넥’이나 ‘인어공주’ 스타일의 드레스를 즐겨 입는 편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연주할 때 아무리 예뻐도 불편한 드레스는 입지 않게 된단다. 클래식계 관계자는 “드레스 색상이나 디자인은 그날의 연주곡 분위기에 맞춰 입더라”며 “죽은 자를 애도하는 ‘레퀴엠’을 연주하면서 화려한 원색 드레스를 입으면 자칫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연주자들의 브랜드 선호도도 분명하다. 신지아는 에스카다와 아르마니, 랄프로렌 드레스를 자주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은 평상복은 싼 것을 입어도 연주복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돌체앤가바나와 베르사체 드레스를 선호한다. 기성복 대신 디자이너 의상을 찾는 연주자도 많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디자이너 서정기의 단골손님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 고현정·노현정·채시라의 웨딩드레스가 그의 작품이다.
이에 비해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 유자왕은 파격적이다. 아찔할 정도로 짧은 미니원피스에 10㎝가 넘는 스틸레토 힐(굽이 송곳처럼 뾰족하고 높은 구두)을 즐긴다. 롱부츠에 원색의 원피스차림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대의상 철학도 확고한 유자왕은 “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내가 입는 옷이 무대 위에서 가장 편안한 옷”이라고 말해왔다.
| 고현정과 노현정 웨딩드레스(사진=TV조선 캡쳐이미지·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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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 때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편안한 옷을 챙겨 입는 편이다(사진=손열음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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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연주회 때 즐겨입는 검은색 슈트(사진=크레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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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사진=주미강 공식 사이트·Marco Borggre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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