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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 부부는 “아이가 6살 때인 7년 전부터 탔던 놀이기구”라며 “지금까지 어떤 사고도 없었다”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미 놀이기구에 올라타 움직이기만 기다렸던 홍씨의 딸은 힘없이 놀이기구에서 내렸다. 같은 해 8월에는 신모(42)씨 부부의 아들(당시 11세·지적장애 1급)이 같은 일을 겪었다. 홍씨와 신씨 부부는 이 사연을 경기도 장애인 인권센터에 제보했다.
경기도 장애인 인권센터는 에버랜드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을 어겼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로 했다. 또 해당 놀이기구 안전 가이드북에 적힌 ‘정신적 장애가 있으신 분은 탑승 전 근무자에게 먼저 문의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 중 ‘정신적 장애가 있으신 분’ 부분을 ‘자신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분’으로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소송은 인권센터 법률위원이자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 변호사(37·변호사시험 1회)가 맡았다.
재판부는 “해당 놀이기구는 작동방식에 비추어 볼 때 안전사고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상존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지적장애가 있는 이들에게만 특별히 악영향을 준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설명했다. 홍씨의 아이는 7년 동안, 신씨 아이는 4년 동안 해당 놀이기구를 이용하면서 위험에 노출되지 않았던 점도 거론했다.
“안전사고 발생 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는 에버랜드 측 주장에 대해서는 “사고가 난다면 당시 지적장애인의 건강 상태나 보호자의 보호조치 정도 등을 고려해 과실비율을 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또 “‘정신적 장애가 있으신 분’이라는 안전 가이드북 문구는 마치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의 경우 일률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고 수정요청을 받아들였다.
이 판결은 양측이 모두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고 집행도 끝났다. 승소를 이끈 김 변호사는 “손해배상액수보다 장애인이 놀이공원에서조차 차별받고 있다는 점을 확인받았다는 점과 장애인 차별문구가 수정됐다는 점이 뿌듯했다”고 웃었다.
이 판결은 테마파크 업계에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미쳤다. 롯데월드는 판결 이후 놀이공원 내 ‘정신적 장애가 있으신 분’이라는 문구가 고쳐지지 않은 곳이 있는지 다시 조사해 모두 수정했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테마파크 업계를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준 판결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