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대량의 착오 주문이 나갔습니다. 취소할 수 있나요?”
수화기를 넘어온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2분23초. 한맥투자증권 임직원과 주주들의 험난한 길을 예고한 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12일, 한맥투자증권의 프로그램트레이딩 외주업체 와이즈시스템 소속 직원이 잘못 입력한 변수값은 모든 코스피200 옵션종목을 차익실현 종목으로 인식하고 순식간에 3만 7900건의 대량 착오 주문을 냈다. 손실금액만 460여억원에 달했다.
한국거래소와 코스콤의 전화기에도 불이 붙었다. 주문 취소를 문의하던 한맥투자증권 실무진은 주문을 원천적으로 취소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거래소의 답변에 구제신청 방법을 문의하기 시작했다. 사고 발생 2시간여가 지난 때였다.
오전 11시48분. 한맥투자증권 직원 22명은 거래소에서 일러준 대로 구제 대상 종목번호와 주문번호, 약정번호를 하나하나 거래소 홈페이지의 구제신청 창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동안 손목이 끊어져라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2000여건밖에 입력하지 못했다. 이런 속도로는 3만 7900여건의 주문기록을 오후 3시30분 안에 마감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때 코스콤은 전체 주문기록을 일괄 신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맥투자증권 직원들은 주문기록의 수기 등록 작업을 중단했다.
잔인한 시간이 흘렀다. 구제신청 마감 2시간 전. 마감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래소는 규정상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구제신청 마감까지 착오거래로 이득을 본 거래 상대방과 이익금을 반환하겠다는 합의를 끝내야 한다는 설명도 있었다. 촉박한 시간에 넘어야 할 산은 끝이 없었다.
구제신청 마감 시간 직전에 코스콤은 프로그램 개발을 끝냈다. 컴퓨터 화면에는 4138건의 주문 데이터가 거래소로 전송 중이라고 떴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쉬려던 찰나, 개발된 프로그램과 거래소의 구제신청 프로그램 간 충돌이 일어났다. 화면에는 주문기록이 전송되고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단 한 건도 전송되지 않았던 것이다.
밤 10시30분. 한맥투자증권은 한국거래소와 모든 회원 증권사, 기관들에게 착오거래 결제대금을 지급보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한 나절 동안의 사투는 아무런 소득없이 끝났다. 지옥 같았던 그날, 언론은 한맥투자증권의 파산을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나흘 뒤 국내 증권사들은 자기매매 관련 착오거래 이익을 전액 반환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외국계 헤지펀드 2곳만이 ‘한맥 사태’ 이후 반년이 지난 지금도 이익금을 되돌려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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