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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인도와 셰익스피어 중 어느 걸 포기하겠느냐고? 셰익스피어 없인 못 산다”(토머스 칼라일·영국 역사가). 비단 영국뿐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부터 유작인 ‘템페스트’까지. 명작을 수없이 남긴 셰익스피어는 지금도 전 세계 문화계에 살아숨쉰다. 올해는 탄생 450주년을 맞아 그의 바람이 더욱 뜨겁게 불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 국립극단과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레퍼토리를 셰익스피어로 잡았다. 중견 및 신예 연출가들의 셰익스피어 재해석도 잇따르고 있다. 그의 탄생일(4월 26일)을 기점으로 9월까지 서울 대학로와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펼쳐질 ‘셰익스피어 문화축제’가 대표적. 왜 ‘셰익스피어의 해’는 지지 않는 걸까.
온통 난장판이다.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했다. 지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TV와 라디오도 끊겼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날. 이 와중에 한 남자는 지하연습실로 향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연출가와 그의 여자친구인 배우, 또 다른 남자배우가 발코니신을 찍으며 열정을 쏟아낸다.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찍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장면을 연습하다’(27일까지 게릴라극장)의 내용이다. 독일 극작가 모리츠 링케의 ‘여자의 벗은 몸을 아직 못본 사나이’를 각색해 이채경(33)이 연출했다. 작품은 셰익스피어 문화축제 속 신예 연출가들이 선보이는 ‘셰익스피어의 자식들’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돼 주목받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한국적 재배치” 이윤택·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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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과 양정웅은 둘 다 새로운 방식으로 셰익스피어를 다시 썼다. 이윤택은 협업으로 변화를 꾀했다. 연극 ‘관객모독’의 기국서 연출과 손을 잡고 판을 키웠다. 이윤택이 연출하고 기국서가 대본을 쓴 ‘미친리어2’(7월 12~20일 충무아트홀)가 그것이다. 기국서는 실험적이면서 파격적인 연출을 즐겨왔다. 이런 그와 한국적 수용을 고민하는 이윤택이 만나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공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친리어2’는 40년 동안 리어왕을 맡은 노배우와 한때 잘나가던 코미디언이었지만 연극 속에서는 웃기지 못하는 다른 배우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서 기국서는 광대 역으로 직접 무대에 서 재미를 줄 계획이다.
양정웅은 도발을 택했다. ‘로미오와 줄리엣’(7월 1~8일 충무아트홀)에서 극 중 남녀 주인공의 성별을 바꿨다. 남자주인공 이름이 줄리엣이고, 여자주인공 이름이 로미오다. 로미오는 독립적인 여자로, 줄리엣은 소극적인 남자로 캐릭터를 잡았다. 이 시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현대적인 무대 구성은 양정웅의 전매특허 중 하나. 지난해 오페라 ‘카르멘’에서도 클럽과 바를 설치했고 캠핑카를 등장시키는 등 ‘21세기 연출’을 선보였다. 양정웅은 이번 작품에서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클럽에서 만나게 할 계획이다. 작품 속 로미오는 스키니진과 미니 드레스를 입고 줄리엣을 유혹한다. 양정웅은 “깊이있는 시대 정신을 이야기한다기보다 이번 시대에 맞게 ‘한바탕 놀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다”며 “피자도 먹고 맥주도 뿌리며 난탕질 하는 발랄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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