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55)이 전작 ‘맡겨진 소녀’ 이후 11년 만에 펴낸 소설이다. 원서 기준으로 116쪽에 불과한 책은 2022년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작품’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소설 배경은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1985년 12월 아일랜드 도시 뉴로스다. 주인공인 석탄 상인 빌 펄롱은 빈곤하게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어느 친절한 어른의 후원 덕에 끼니 걱정 없이 살면서 스스로 운 좋은 사람이라고 자각하는 인물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이 안온한 일상을 흔들 사건이 일어난다.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갔다가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는데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된다.
작가는 사회 공동체의 은밀한 공모를 발견하고 주변의 평화를 위해 양심에 따른 용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펄롱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소설은 실화인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18세기부터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정부와 함께 운영한 막달레나 세탁소는 재교육을 명목으로 미혼모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를 수용해왔지만 실상은 여성 약 3만 명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킨 곳이었다. 1996년 문을 닫았고 2013년이 되어서야 정부는 뒤늦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소설은 단순한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펄롱을 통해 신랄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작가 키건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문체로 흔들리는 펄롱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신형철 평론가는 추천평을 통해 “소설이 끝날 때 우리는 우리가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하나를 얻게 된다”며 “‘키거니언 엔딩’이라고 부르고 싶다. 감히 기대해도 될까 싶은 일이 실현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 소설이 현대판 크리스마스의 고전이라고 칭송받는 이유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