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투자자 구하려다 코스닥 개미 잡을라

환급금 마련 나서면서…대량 매물에 주가급락 우려
환매중단 펀드자산 중 5200억이 주식·CB
'라임리스트'까지 돌아…개미 피해 입을 수도
  • 등록 2020-02-19 오전 12:20:00

    수정 2020-02-19 오후 4:36:14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1조6000억원대 투자자 돈을 돌려주지 못해 논란을 빚는 라임자산운용이 본격적으로 환급금 마련에 나서며 그 불똥이 코스닥 시장의 개미 투자자들에게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라임운용이 보유한 주식 물량을 털어내면서 해당 주가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임 포트폴리오에 한계기업뿐 아니라 비교적 건실한 기업의 전환사채(CB)도 포함돼 있어 라임 후폭풍에 애먼 코스닥 투자자까지 눈물을 흘려야 할 상황이다.

라임운용, 5200억원대 상장주식·채권 처분 부담

18일 라임운용에 따르면 현재 환매(투자금 환급)를 중단한 사모펀드인 ‘플루토 FI D-1호’와 ‘테티스 2호’의 투자 자산 1조5268억원(장부금액 기준) 중 약 5200억원은 증권시장 상장회사의 주식이나 메자닌(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으로 구성돼 있다. 투자자에게 돌려줄 환급금을 마련하려면 펀드에 담고 있는 주식과 채권을 시장에서 처분해야 하는 셈이다.

정상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펀드 상품이라면 만기가 도래했을 때 투자자가 기한을 연장하거나 만기가 없는 상품의 경우 펀드에 투자금을 계속 넣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운용사도 급하게 자산을 내다 팔아 환급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라임운용 펀드의 경우 사기 논란 등이 불거지며 당장 투자금 전액을 돌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쳐 대규모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다.

라임 펀드가 투자한 주식·채권의 상당 규모가 코스닥 상장사의 전환사채(CB)다. 전환사채는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가 미리 약속한 조건에 따라 만기 때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거나 만기 전에 투자한 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회사채다. 라임운용 관계자는 “회사가 현금 지급 능력이 있으면 사채를 조기에 상환하라고 청구해 투자 원금을 돌려받고, 그게 어려울 경우 보유 중인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서 시장에서 파는 방법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오버행’(대량 매각 대기 물량)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라임운용이 투자한 전환사채 등이 주식으로 전환돼 시장에 대거 풀리면서 해당 종목의 주가가 주저앉는 등 라임과 무관한 개미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라임운용 투자한 ‘블랙 리스트’까지 돌아

이종필(왼쪽)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지난해 10월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제금융센터(IFC)에서 열린 펀드 환매 중단 사태 기자 간담회에서 원종준 라임운용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자 사이에선 이미 ‘라임 리스트’까지 돌고 있다. 라임운용이 전환사채나 주식 등을 보유한 상장회사 명단이 블랙 리스트처럼 공유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 최근까지 라임운용이 지분을 갖고 있다고 공시한 상장사는 모두 7개다. 스타모빌리티(158310) 보유 지분율이 41.2%(이하 공시일 기준·전환사채 지분 포함)에 달하고, 에스모 머티리얼즈(087730)(20.5%), 슈펙스비앤피(058530)(19.6%), 블러썸엠앤씨(263920)(14.3%), 에스모(073070)(13.8%), 동양네트웍스(030790)(12.5%) 등도 라임 지분율이 10%를 넘는다. 이중 주식 거래가 정지된 코스피 상장사인 동양네트웍스를 제외한 6개사는 모두 주식이 정상 거래 중이다.

라임운용의 ‘주문자 상표부착(OEM) 펀드’를 운용했다는 의심을 받는 라움자산운용과 포트코리아자산운용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를 합치면 이 같은 라임 리스트는 더 늘어난다. OEM 펀드란 라임운용이 자기 펀드끼리 거래할 때 적용받는 규제를 피하려고 다른 운용사에 라임이 직접 투자·운용을 지시하는 이른바 ‘아바타 펀드’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라임운용에 총수익스와프(TRS)라는 일종의 대출을 제공한 KB증권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도 사실상 범(凡) 라임 계열 상장사에 해당한다. TRS 계약은 자산운용사가 증권사에 투자자의 돈을 담보로 맡기면 증권사가 운용사 지시를 받아 대신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는 것이다. 자산의 실질적인 보유자는 라임운용과 같은 자산운용사지만, 현행 제도상으론 증권사가 자산을 갖고 있다고 공시해야 하는 의무를 대신 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찌감치 ‘라임 리스트’에 올랐다가 관리 종목에 지정되는 등 지금은 주식 거래가 정지된 리드(197210), 바이오빌(065940), 파티게임즈(194510), 폴루스바이오팜(007630) 등을 제외하면 라임운용이 투자한 상장사 중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며 “당장 주식 매물이 쏟아지는 것을 넘어서 라임이 손댔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사냥꾼이 개입한 ‘무자본 인수·합병’(자기 돈 없이 빌린 돈으로 상장사를 사들이는 것) 대상 기업으로 분류돼 주가가 폭락하는 등 멀쩡한 회사와 주식 투자자들까지 어려움을 겪을까 봐 염려스럽다”고 우려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젬백스지오(041590)의 경우 라임운용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보유 중인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시장에서 대거 매도하면서 지난해 12월 19일 1주당 1585원이었던 주가(종가 기준)가 지난달 6일 1350원으로 약 15%나 폭락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이 라임운용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라임 입장에서도 보유 자산의 헐값 매각을 피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산 관리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라임운용의 펀드를 투자자들이 신뢰할 만한 대형 운용사 등에 넘기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맡아줄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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