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운용, 5200억원대 상장주식·채권 처분 부담
정상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펀드 상품이라면 만기가 도래했을 때 투자자가 기한을 연장하거나 만기가 없는 상품의 경우 펀드에 투자금을 계속 넣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운용사도 급하게 자산을 내다 팔아 환급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라임운용 펀드의 경우 사기 논란 등이 불거지며 당장 투자금 전액을 돌려달라는 요구가 빗발쳐 대규모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다.
라임 펀드가 투자한 주식·채권의 상당 규모가 코스닥 상장사의 전환사채(CB)다. 전환사채는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가 미리 약속한 조건에 따라 만기 때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거나 만기 전에 투자한 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회사채다. 라임운용 관계자는 “회사가 현금 지급 능력이 있으면 사채를 조기에 상환하라고 청구해 투자 원금을 돌려받고, 그게 어려울 경우 보유 중인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서 시장에서 파는 방법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라임운용 투자한 ‘블랙 리스트’까지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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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최근까지 라임운용이 지분을 갖고 있다고 공시한 상장사는 모두 7개다. 스타모빌리티(158310) 보유 지분율이 41.2%(이하 공시일 기준·전환사채 지분 포함)에 달하고, 에스모 머티리얼즈(087730)(20.5%), 슈펙스비앤피(058530)(19.6%), 블러썸엠앤씨(263920)(14.3%), 에스모(073070)(13.8%), 동양네트웍스(030790)(12.5%) 등도 라임 지분율이 10%를 넘는다. 이중 주식 거래가 정지된 코스피 상장사인 동양네트웍스를 제외한 6개사는 모두 주식이 정상 거래 중이다.
라임운용의 ‘주문자 상표부착(OEM) 펀드’를 운용했다는 의심을 받는 라움자산운용과 포트코리아자산운용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를 합치면 이 같은 라임 리스트는 더 늘어난다. OEM 펀드란 라임운용이 자기 펀드끼리 거래할 때 적용받는 규제를 피하려고 다른 운용사에 라임이 직접 투자·운용을 지시하는 이른바 ‘아바타 펀드’를 만들었다는 의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찌감치 ‘라임 리스트’에 올랐다가 관리 종목에 지정되는 등 지금은 주식 거래가 정지된 리드(197210), 바이오빌(065940), 파티게임즈(194510), 폴루스바이오팜(007630) 등을 제외하면 라임운용이 투자한 상장사 중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며 “당장 주식 매물이 쏟아지는 것을 넘어서 라임이 손댔다는 이유만으로 기업 사냥꾼이 개입한 ‘무자본 인수·합병’(자기 돈 없이 빌린 돈으로 상장사를 사들이는 것) 대상 기업으로 분류돼 주가가 폭락하는 등 멀쩡한 회사와 주식 투자자들까지 어려움을 겪을까 봐 염려스럽다”고 우려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젬백스지오(041590)의 경우 라임운용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보유 중인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시장에서 대거 매도하면서 지난해 12월 19일 1주당 1585원이었던 주가(종가 기준)가 지난달 6일 1350원으로 약 15%나 폭락했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이 라임운용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라임 입장에서도 보유 자산의 헐값 매각을 피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산 관리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라임운용의 펀드를 투자자들이 신뢰할 만한 대형 운용사 등에 넘기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맡아줄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