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스웨덴 기업 이케아는 일찌감치 1973년 본사를 네덜란드 델프트로 옮겼다. 스웨덴의 높은 세금을 피해 네덜란드로 간 것이다. 현재 이케아의 ‘심장’이라는 엘름훌트에는 180여개 자회사중 디자인을 연구하는 이케아 오브 스웨덴(IOS) 등 14곳만 남아있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1982년 자신의 지분을 모두 슈티슈잉 잉카 재단에 기부하며 소유권을 내려놓는 듯 했다. 이케아는 이후 수많은 자회사와 재단을 만들면서 복잡한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현재 스티슈잉 잉카 재단이 잉카홀딩이라는 지주회사 지분을 100% 가지고 있으며, 잉카홀딩이 이케아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룩셈부르크에 인터이케아홀딩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는 인터로고 재단이 지배하게끔 만들었다. 미국에 설립된 재단은 투명하게 사용내역이 공개되는데 비해 네덜란드의 경우 재단들이 거의 규제를 받지 않고, 제 3자에게 운영내역을 공개할 의무도 없다. 이케아는 기업공개(IPO)도 되지 않아 정확한 재무구조를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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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웨덴 공영 TV인 SVT 등에 따르면 잉바르 캄프라드는 20년전에 조세 피난처인 리히텐슈티인에 인터로고라는 재단을 세우고 17억~22억유로(2조2000억~2조7700억원)의 세금을 탈세했다. 특히 이케아 전세계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판매대금의 3%를 인터로고 재단과 인터이케아에 지급하도록 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복잡한 지배구조는 이케아의 독립적 운영과 강한 재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탈세를 위한 것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다. 캄프라드는 결국 “인터로고 재단은 나의 가족과 외부인으로 구성된 이사회에 의해 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실토했다.
스웨덴의 작가 아스브링크 엘리자베스는 2011년 발간한 책에서 “캄프라드가 나치에 직접 가담해 당원 모집에 나섰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나치인사들과 교류했다”고 폭로했다. 캄프라드의 나치 활동때문에 이케아를 설립한 해인 1943년 스웨덴 비밀경찰에 요주의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나치로 분류되는 극우주의자 페델 엥달을 1950년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는가 하면 2010년엔 인터뷰에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캄프라드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반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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