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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최근 남양유업 사태는 우리사회에 오랫동안 내재돼있던 ‘갑(甲)’과 ‘을(乙)’을 사회적 화두로 올려놓았다. 여야 정치권도 즉각 입법화에 착수해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쟁점법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다만 여야간 해법에 차이가 있어 법안처리에 진통도 예상된다.
이에 이데일리는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이어 경제민주화 쟁점법안 토론시리즈 두번째 순서로 갑을관계법을 나란히 제출한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의 입장을 듣고 좌담형식으로 정리했다.
현행법 개정이냐 별도법 제정이냐
“불공정한 갑을관계는 적어도 15년 전부터 있어온 고질적이고 포괄적인 문제로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이종훈 의원)
“특정기업의 상품만을 취급하는 대리점거래의 불공정행위 관행을 개선할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종걸 의원)
최근 남양유업 사태를 바라보는 두 의원의 기본입장은 이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동일한 진단에 대한 처방은 다르다. 이종훈 의원은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그간 제역할을 못했던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기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반면 이종걸 의원은 대리점거래 등이 현행 공정거래법의 적용대상인지도 확실치 않다고 판단했다.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대리점법)’이라는 법안을 별도로 제정한 이유다.
이종훈 의원=2006년 어느 남양유업 대리점은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를 공정위에 신고했지만 당시 공정위의 처분은 ‘다시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였다.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을이 공정위의 도움없이 갑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줘야 하고, 공정위가 제 역할을 못할 때 을이 공정위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근본해법을 위해 공정거래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
상대 법안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이종훈 의원은 이종걸 의원의 법안에 대해 “갑을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흔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갑을관계를 공정위에 계속 맡겨두면 근본원인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이종걸 의원은 “(이종훈 의원의 법안은) 새누리당의 당론이 아닐 정도로 논란이 있다”면서 “흰 고양이면 어떻고 검은 고양이면 어떠한가.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반박했다.
보험설계사·골프캐디는 어떻게 보호하나
사회적으로 덜 부각된 또다른 을인 특수고용노동자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많다. 보험설계사나 골프캐디 등이 대표적이다. 두 의원의 법안이 이들까지 실효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두 의원은 이러한 문제에 깊은 공감을 보이면서도 다른 해법을 내놨다.
이종훈 의원=(이번 개정안에) 대리점·특약점·특판점 등 다양한 형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공정위가 각 유형별 지침을 세부적으로 마련하고 고시해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도록 법적근거를 마련했다.
이종걸 의원=특수고용노동자는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제로는 임금근로자의 성격도 띤다. 따라서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할 게 아니라 이들을 위한 맞춤형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현실성 두고 이견
그러나 두 의원은 일반적인 손해배상으로는 불공정 갑을관계를 규제하는데 미흡하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다만 상대 법안의 방법에 대한 타당성 측면에서 이견은 있었다.
이종걸 의원=현행 공정거래법은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는데, 공정위가 이러한 ‘현저성’을 입증하지 못해 패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종훈 의원의 법안은) 현실적으로 을이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성이 없다.
이종훈 의원=갑이 불공정행위를 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경제적 손해를 입혀 함부로 착취할 수 없는 구조로 개선할 수 있다. (이종걸 의원이 제출한) 대리점법은 대리점거래만 규제하는 것으로 근본처방이 아니다.
집단소송제 도입은 공감대
두 의원은 또다른 쟁점인 집단소송제 도입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했다. 기업의 부당행위로 인한 1명의 피해자라도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도 모두 배상받는 제도로 현재 국내에서는 증권분야에만 적용되고 있다. 집단소송제는 이종훈 의원이 내놓은 법안의 핵심내용이다. 이종걸 의원은 법안에 집단소송제를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종훈 의원=약자인 을이 개별적으로 많은 소송비용을 감당하면서 대형로펌을 앞세운 갑에 대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소송가액이 증가해 대형로펌이 을을 지원하는 경제적 유인도 마련할 수 있다. 갑에게 충분한 비용을 부담하게 해 함부로 위법행위를 할 수 없는 사전적 제어장치 효과도 있다.
이종걸 의원=집단소송제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혼자 소송을 수행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드는 탓에 현실적으로 소송을 수행하기가 어려워 도입이 필요하다. 집단소송제는 그동안 민주당에서 도입을 주장했으나 새누리당에서 매번 반대해 불발됐다. 이번에 새누리당에서 집단소송제를 포함시킨 것은 민주당도 원칙적으로 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