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쌍용차 영업소 "車특수? 딴나라 얘기죠"

파업으로 재고분마저 다 소진..전시차도 품귀현상
출고 6월 넘어가면 개소세 감면,고객 부담으로
수출 계약분 "약속 못 지켜,회사 신용 더 떨어져"
  • 등록 2009-06-07 오전 9:06:02

    수정 2009-06-07 오전 9:06:02

[이데일리 김보리기자] "고객님, 죄송합니다. 카이런은 7월 중순까진 기다리셔야 할 것 같고, 전시차량도 거의 바닥나서…" "공장이 곧 가동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영업소) 

"5월, 6월엔 가격도 싸진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기약없이 기다릴 수도 없고, 다른 회사라도 알아봐야죠" (고객)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쌍용자동차(003620) 영업소. 그야말로 황량한 분위기다. 자동차 판매 영업소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전시차량도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차가 너무 잘 팔려서가 아니다. 파업으로 물량조달이 안되다보니 고객수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을 놓치지 않으려 전시차까지 팔고 있는 상황이다.  

5월은 자동차 업체들에게 단비 같은 한 달이었다. 정부의 노후차 지원 정책과 개별소비세 감면이 동시에 시행되면서 내수 시장이 눈 녹 듯 풀렸다. 완성차 5개 업체들은 평균 30%가 넘는 내수 신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쌍용차의 5월은 오히려 잔인했다. 내수 판매는 전월대비 17%나 줄었다.

회사측은 "5월 자동차 시장이 특수를 누렸지만 쌍용차는 4000대 이상의 계약물량이 출고가 안 돼 어려운 자금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사측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생산차질은 3793대, 820억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

쌍용차 대리점 판매원들은 하나같이 공장중단으로 재고분 마저 다 소진돼 `차가 없어 못 파는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고객들에게 이달 말 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하고 있지만, 공장에 공권력 투입이 예상돼 이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 재고 이미 다 소진.."전시차도 없어요"

"전시장에 체어맨 W, 카이런, 액티언이 있었는데 진작에 다 나갔어요. 고객들이 차를 달라고 하시는데 재고가 없어 전시차를 빼 드렸어요" 

고객 주문 쇄도로 전시차마저 판매해야하는 `행복한 고민`이 아니라, 파업으로 전시차라도 팔아야 하는 `울며 겨자먹기`인 상황에 쌍용차 판매원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 평소 10대가 들어가는 쌍용차의 한 전시장에 체어맨 한 대 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 마저도 계약이 이뤄져 곧 고객에게 인도된다.


잠실에 위치한 영업소 직원은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며 "5월에 노후차 지원으로 평소보다 주문 전화는 두 배 이상 받았는데, 차가 없으니 어쩔 수 있냐"고 볼멘 소리를 냈다.

지난 4월부터 공장이 부분파업에 들어가고 지난 달 21일부터 평택공장이 완전히 섰다.  이제 재고마저 바닥났다.

쌍용차 관계자는 "영업소 규모별로 비치해 둔 전시차량도 재고로 잡히는데, 현재는 그 전시용 재고차량조차 다 팔린 상황"이라며 "공장이 다시 돌아가기 전에는 소비자들이 차를 사고 싶어도 차를 구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쌍용차 영업소에서 전시차를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인 상황. 재고가 없어 쌍용차를 사려면 평균 한 달 여는 기다려야 되는 상황이 오자 영업소 판매원들이 우선 급한 대로 전시차라도 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영업소 직원은 "전시차라고 해서 가격이 싼 것도 아니지만, 원하시는 옵션이 좀 달라도 그나마 안 기다려도 되니깐 전시차라도 가져간다"고 말했다.

서교동에 위치한 영업소에서 간신히 카이런 상아색 한 대를 볼 수 있었다. 서교동 영업소 직원은 "이 차도 며칠 전에 고객이 주문을 해서 곧 나간다"며 "원래 이 고객도 다른 색을 원하셨는데 빨리 구할 수 있는 차가 이 색이라 그냥 이걸로 계약했다"고 말했다.

인기가 높은 체어맨H·W, 카이런 등은 더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카이런 4륜과 체어맨은 한 달여, 수요가 더 많은 카이런 2륜은 7월 중순이 되서야 출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대리점 직원들은 정리해고 시점인 오는 8일이면 공장이 정상화돼 6월 말과 7월 초에는 차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확실치 않다. 지난 3일 쌍용차 박영태 공동관리인은 8일 이후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고 언급했다. 전운이 감도는 평택공장이 언제 정상화가 될 지는 미지수다.

◇ "출고 늦어져 개소세 인하분도 고객 부담으로"

"고객님, 6월 말도 사실 장담하기 어려워요. 혹시라도 출고가 다음 달로 넘어가면 체어맨W의 경우, 가격이 최대 350여 만원까지 올라갈 수가 있어서…"


체어맨 구매상담을 하던 고객은 개별소비세 이야기를 듣자, 상담을 중단했다.
 
오는 6월 말로 개별소비세 감면 혜택이 종료되기 때문에 고객들은 이달안에 차를 받지 못하면 개별소비세 감면분까지 고객의 몫이 된다.
 
고객이 아무리 빨리 차를 신청해도 개별소비세 감면은 출고 시점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공장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고객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체어맨W의 경우 옵션별로 개소세 감면 혜택이 170만원에서 350여 만원에 이른다. 쌍용차의 인기 모델인 렉스턴의 경우 98만원에서 138만원까지, 카이런의 경우 39만원에서 110여 만원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출고가 7월로 넘어가면 개소세 감면분 또한 오롯이 고객의 몫.

영업소를 나가는 한 고객은 "체어맨CW700을 상담 받으려고 왔는데, 이번달엔 5850만원에 살 수 있는 차를 다음달에 6060만원께로 부담해야 돼 그냥 돌아간다"고 말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5월과 6월이 노후차 지원에 개소세 감면까지 받을 수 있어 특수라고 하지만 쌍용차엔 `딴 세상 얘기`"라며 "법정관리로 유동성이 묶여 차 판매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차가 없어 못 판다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수출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올 초 쌍용차의 법정관리로 해외 딜러들은 쌍용차를 팔기 어렵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하기도 했다. 쌍용차는 해외 딜러들을 지난 4월 서울 모터쇼에 초대·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백방의 노력으로 지난 5월부터 2200대의 고정 수출분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 물량 가운데 5월에 나간 수출대수는 고작 600여 대, 주문량의 40%를 밑도는 수준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해외 딜러들에게 정말 사정사정하면서 어르고 달래 그나마 2200대를 확보했는데, `우리만 믿어달라`고 큰 소리치다가 지금 약속을 못 지키고 있으니 회사 신용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달엔 생산이 올 스톱돼 그나마 지난 달 만큼도 수출하지 못할 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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