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취약계층 118만 가구에 대한 에너지바우처 지원 금액을 2배 인상하기로 한 가운데, 당정은 지원 대상을 중산층까지 늘리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난방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튿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중산층 지원 대책을 좀 더 꼼꼼히 짜고 재원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응했다. 설 밥상을 뒤흔든 ‘난방비 폭탄’이 이달도 이어질 거라 예상되면서, 성난 민심을 서둘러 진화하기 위해 당정이 재정당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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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총인구의 약 60%…기준도 모호
중산층의 기준은 제각각이다. 일반적으로 중산층은 중위소득계층을 일컫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위소득 75~200% 사이의 소득 계층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 통계청은 중위소득 50~150%의 더 좁은 범위로 설정했다가 지난해부터 두 기준을 함께 발표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라도 우리나라 총인구의 60%는 중산층에 해당한다. 최근 취약계층 약 200만 가구를 지원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3000억원에 달했다. 중산층까지 포함될 경우 필요한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지원 대상을 가려내기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지난 2018년 아동수당 지급 당시에도 이미 같은 진통을 겪은 바 있다. 소득 상위 10% 가구를 제외하는 것을 두고 여야의 공방이 거셌는데,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들을 찾아내기 위한 비용에만 1626억원이 들어간다고 추산했다. 결국 정부는 전체 아동에게 수당을 지급할 때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더 적다는 판단 아래 6세 미만 아동 전부를 대상으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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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산층 난방비 지원의 해법은 추경밖에 없지만, 물가 상승의 부작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뜩이나 금융시장이 어렵고 한전채 발행으로 어려움이 있는데, 돈을 더 풀면 주식시장, 부동산 시장을 흔들 수 있다”며 “정부로서는 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추경에 대해서 줄곧 선을 긋고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대부분 지원해줄거면 애초에 요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다. 돈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물가가 안정화 추세로 오는 상황에서 과도하게 지원하면 물가가 오르는 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이달부터는 전기요금 상승분이 반영되는데다, 여름 들어서는 냉방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제22대 총선이 1년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정치권에선 선거를 의식해 표를 얻기 위해 추경을 하자는 것”이라며 “이번에 안 하더라도 올 가을에는 추경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결국 원유·가스·석탄 등 글로벌 에너지가격이 하락하지 않는다면 재정을 써서 냉·난방비를 지원하라는 정치권의 압박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