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의 경제학]‘덜컥’ 원전 해체부터 결정한 정부

  • 등록 2015-10-28 오전 5:00:15

    수정 2015-10-28 오후 1:54:38

[세종=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버몬트 양키원전은 지난 해 12월 29일 영구정지(폐로) 결정이 내려진 뒤 60년 간의 폐로 계획을 수립했다. 우선 습식 저장소에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2020년까지 건식 저장소로 옮겨 2052년까지 휴면 상태로 놔두고, 이후 방사능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2052년부터 폐로 준비 절차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2069년부터 원자로 해체 등 본격적인 폐로 작업이 시작되며, 2075년 이후엔 부지 복원이 진행된다.

이를 위한 비용은 총 12억4200만달러(한화 약 1조 3800억원)로 추산됐다. 이 중 운영허가 종료에 따른 원자로 해체 등을 위한 비용이 8억1700만달러이며,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비용과 원전 현장 복구 비용이 각각 3억6800만달러, 5700만달러다. 원전 운영사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폐로 요건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이같이 해체 비용을 산정한 결과다.

양키원전의 정부 담당 매니저인 조셉 알 린치씨는 “현재까지 절반 가량인 6억 6500만달러를 마련했으며, 나머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보관을 대신 해주고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호한 원전 폐로 비용 6033억원..산정 근거 없어

우리 정부는 2년마다 방사성폐기물관리비용산정위원회를 열어 원전 한 기를 해체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산정한다. 지난 2012년엔 원전 한 기당 해체 비용이 평균 6033억원으로 책정됐다.

우리나라 원전은 총 24기로 경수로와 중수로 형태가 있으며, 경수로 원전의 경우 유사하긴 하지만 다른 모델이다. 원전이 위치한 곳이나 주변 환경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정부는 평균 해체 비용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해체 비용이 무엇을 평가 기준으로 삼았으며 어떻게 산정됐는지에 대해선 정부나 한국수력원자력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전 한 기를 해체하는 데 약 1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6033억원이면 충분하다는 게 정부와 한수원의 일관된 주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원전 해체 사례가 많지 않은데다, 나라마다 정책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해체 비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 것인지를 항목별로 나누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고리 1호기 해체는 6033억원이면 충분하며, 해체 방식 등은 2022년 6월까지 원안위에 제출할 예정인 해체계획서에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해체 경험이 가장 많은 미국은 △폐로 계획 △폐로 시기 △폐로를 위한 자금 조달 방법 △폐로시 환경검토 요구사항 등과 같은 NRC의 폐로 요건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원전 해체 비용을 산정토록 하고 있다. 모든 해체 비용 산정은 이 규정에서 출발한다는 얘기다.

한수원은 현재 고리 1호기를 위한 해체 비용 6033억원을 한수원이 현금으로 확보하고 있을 뿐, 나머지 원전 23기에 대한 해체 비용은 장부상에만 충당부채로 기재하고 있다. 신규 원전을 짓거나 설비 투자 등을 위해 돈이 필요한데, 은행에서 빌리면 이자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해체 비용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로가 우선 결정된 상황”이라며 “원전 해체 역시 안전이 최우선인데, 향후 원전 부지 복구 비용 등 해체 비용 산정 근거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로 비용을 어떻게 책정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체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예상보다 비용도 많이 들게 된다”고 내다봤다.

자력해체 가능? 기술·경험 미비..核연료 처분도 문제

조석 한수원 사장은 “우리 기술로 원전 해체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해체 기술이나 경험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폐기물 보관 장소 부족, 폐기물 처리방안 미비, 폐기물 처리기술 미개발 등으로 도카이 원전 1호기 해체 작업을 2019년 이후로 미룬 바 있다.

정부는 오는 2021년까지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 38개(미래창조과학부)와 실용화기술 58개(산업통상자원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체 기술은 사업관리와 엔지니어링 등 설계·인허가, 제염(除染), 기계적 절단 등 해체, 폐기물 처리, 잔류 방사능 측정 같은 부지복원 등 5개 분야로 분류된다.

현재까지 확보한 핵심기술은 21개로, 아직 확보하지 못한 17개 기술에 대해선 매년 100억원 가량 투자해 2021년까지 기술개발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실용화기술 역시 17개를 확보하지 못했는데 2021년까지 총 700억원을 투자해 기술개발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고리 1호기를 해체하고 난 뒤 원전 내부에 사용후핵연료가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영구처분장이 언제 건설될지 아직 알 수 없어서다. 국내 다른 원전들도 향후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지면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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