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명량' 절반의 성공

  • 등록 2014-08-14 오전 6:30:00

    수정 2014-08-14 오전 6:30:00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명량’은 관객의 영화다. 1000만 관객을 넘어가는 영화가 갖춰야 할 미덕 중 하나는 여러 요소 중 어느 한 가지만 작용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연출력, 스타 파워, 기술력, 극장상영 횟수, 시류에 따른 관객의 선호도, 다양한 연령의 관객층 등 여러 요소들이 골고루 작용할수록 효과가 배가돼 흥행으로 이어진다. 역대 1000만 관객 달성 영화들이 그랬고, ‘명량’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1000만 관객 달성 영화로서의 공통점을 전제하고 그중 관객과 감독의 관계에 맞춰 영화를 분석해 보자. ‘명량’은 ‘최종병기 활’로 대한민국 최고 흥행 감독으로 부상한 김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다만 ‘명량’은 확실히 감독의 영화라기보다는 관객의 영화다. 최근 한국에 유행하는 그 흔한 팩션사극이 아닌 정통사극에 가깝다. 그렇다고 교과서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점 또한 보여준다. 역사이기 이전에 오락을 추구하는 영화는 역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영화적 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이순신이라는 비중 있는 인물을 다룬 이 영화가 가장 먼저 착수한 지점 역시 이순신 자체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다 아는 이순신을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만들 건가가 감독의 첫 번째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명량’의 이순신은 어떻게 다르게 묘사됐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감독이 그려낸 이순신은 그동안 접해온 교과서적인 이순신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감독이 공을 들여 그려낸 이순신은 그저 영웅이었다는 점에서 과거 어떤 이순신과도 차별성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영웅으로 그려진 이순신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초인적인 용기로 적을 무찌르는 선봉에 선다. 그건 ‘난중일기’에 그대로 묘사된 대로다. 이순신을 해석하는 일보다도 관객과의 관계를 더 중시한 듯한 감독의 판단은 이순신을 그냥 놔둔 채 대신 주변의 인물, 특히 정탐꾼 역의 임준영(진구 분)과 그의 아내 정씨 여인(이정현 분)의 에피소드에 더 치중했고, 회오리에 빠져 대장선이 좌초될 위기에 몰렸을 때 백성들이 달려들어 장군을 구출해낸 극적인 에피소드를 강조했다. 이로써 ‘명량’은 이순신 자체보다도 이순신과 백성의 관계성으로 파악하고자 한 감독의 의도가 십분 발휘된 영화로 완성됐다.

결국 관객성을 지향하는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지금 그대로 2014년 뜨거운 여름 관객과 공명했다. 관객인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와 그 난망한 해결로 인한 시름, 온갖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격랑 속에서 좌초하는 듯한 ‘한국호(號)’에 대한 무수한 실망과 좌절 속에 있다. 대한국민, 그리고 관객의 자리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이순신을 바라보며 감정이입한 이도 있다. 영화는 ‘누군가의 손길이 구원을 해준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탈바꿈됐다.

혹자는 오로지 이순신에 대한 명성 때문에 관객이 마치 자동적으로 영화를 좋아한 것으로 판단한다. 기실 그렇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백성과 이순신의 관계 속에서 현재의 관객이 이순신의 손길과 입장에 동화된 바로 그 순간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라고 보고 싶다. 설사 그것이 감독의 계산된 의도라 할지라도.

‘명량’의 이순신은 영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순신이 좀 더 해석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이 영화는 실패지만, 관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마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성공이다. 그저 바라보는 영웅이 아닌 스스로가 영웅의 입장에서 위로받고 싶게 만든 영화다. 박스오피스의 수치가 아닌 영화의 메시지란 측면에서 이 영화는 딱 ‘절반의 성공’인 영화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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