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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 “제발 시위 그만해주세요. 지각으로 비정규직들이 해고당하고 있어요.”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승객들은 열차를 점령한 시위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욕설도 퍼부으며 맞선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 강자가 되어 버린 전장연의 권력 앞에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낀다. 지하철이 전쟁터가 됐다. 한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서울 지하철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권리예산 확보 등을 요구하며 출퇴근하는 서울시민의 발을 볼모로 지하철에서 불법 시위를 강행한지 3년째다. 그 동안 길 위에서 86시간 33분을 도둑맞은 시민의 고통은 증오와 혐오를 넘어 이제 절규에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요구한 예산이 반영되지 않으면 출근길 지하철 불법 시위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지난 20일 선언했다. 도대체 서울 지하철이 이들의 예산 반영을 하는데 어떤 방해를 하였기에 아침·저녁으로 시민을 볼모로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는지 이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했다.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해서 시민을 인질로 한 극단적 방식의 시위는 반감만 불러올 뿐이다. 목적이 정의를 지향할지라도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으로 시민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나의 권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은 그 행위의 정당성을 상실하게 한다. 타인의 권리를 장시간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지하철 불법 행위를 무기로 삼아야만 장애인의 권리 확보가 가능할까, 그 행위가 과연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잊혀지는 거라고. 불법 시위를 이어간다면 잊혀지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모두가 등을 돌린 공공의 적으로 기억될 것임은 분명하다. 장애인의 권리 보장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지하철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주장을 펼칠 자유는 지하철이 아니라도 충분히 다른 공간에서 다른 방식으로 보장될 수 있다.
하루 평균 7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이 소중한 공간이 사회적 무질서에서 비롯되는 시민의 불안으로 잠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하철을 어지럽히는 무질서 행위는 여기서 멈춰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