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rd WWEF]나영석 PD의 성공 비결은 "꽃보다 사람"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서 '관계의 기술' 강연
방송국 회의실 칠판에 "사람이 전 재산이다"
  • 등록 2014-10-14 오전 6:00:00

    수정 2014-10-14 오전 11:12:49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 시스템의 한계를 콘텐츠로 뛰어넘었다. KBS에서 ‘1박2일’을 국민 프로그램에 올려놓으며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성공을 맛 본 그는 케이블로 자리를 옮겨 ‘꽃보다’ 시리즈로 다시 비상했다.

흔히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원만한 대인관계, 폭넓은 대인관계가 필수라고 말한다. 적어도 나영석 PD의 사례로만 본다면 이 말은 틀렸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묻는 말에 “소소하게, 깊게 사귀는 편”이라고 했다. 얇고 넓게 퍼지는 인간 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SNS 등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박2일’에 이승기의 절친으로 출연했던 이서진을 ‘꽃보다 할배’에 짐꾼으로 캐스팅하고, 그를 다시 오는 17일 새롭게 선보이는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발탁하는 등 출연진이 겹치는 것은 아는 사람이 그만큼 적어서다. 그러면서도 성공의 비결로는 또 ‘사람’을 이야기했다.

“좋은 멘토도 있었고, 좋은 작가도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과 죽이 잘 맞아 일한다는 생각 안 하고 재미있게 했던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닐까 싶네요.”

나 PD가 언급한 멘토와 작가는 현재 CJ E&M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명한 tvN 기획제작국장과 이우정 작가를 말한다. 세 사람은 KBS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으로 처음 만났다. 나 PD가 입사 2년차 막내 조연출, 이우정 작가가 갓 입봉을 했을 때였다. 이후 두 사람은 나 PD가 처음으로 메인 연출을 맡은 ‘여걸파이브’를 시작으로 ‘여걸식스’ ‘1박2일’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까지 성공의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KBS 입사 초기에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예능 PD가 갖춰야할 첫 번째 자질이 연예인과 친하게 지내는 일이더라고요.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데 이명한 선배가 명쾌하게 상황을 정리해줬어요. ‘PD라는 직업의 본질이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인데 그것만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라고요. 대수롭지 않은 조언 같아도 그렇게 확신을 갖고 얘기해주는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1박2일’ ‘꽃보다 할배’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성공의 또 다른 조력자인 이우정 작가와 관련해선 “결이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관심은 비슷한데 접근 방식이 다른 거죠. 이우정 작가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인데 반해 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에요. 이렇듯 다른 점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고 봅니다.”

나 PD는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여성 동료들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여배우들과 ‘꽃보다 누나’ 촬영 당시 나 PD는 “알다가도 모를 게 여자”라며 난색을 표한 바 있다. 나 PD는 같은 상황도 다르게 이해하고 행동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샤넬백에 빗대 유쾌하게 설명했다.

“남자는 사물을 볼 때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 이분법적인 사고를 본능적으로 해요. 그런데 여자들은 달라요. 필요 없어도 좋은 게 있고, 필요해도 싫은 게 있죠. 예를 들어 샤넬백을 산다고 치면 남자들은 내 월급 500만원에 샤넬백이 400만원. 이걸 빼면 100만원이 남는데 그걸로 한 달을 산다고 했을 때 살 수 있다는 결론이 나면 샤넬백을 사거든요. 그런데 여자들은 ‘샤넬백? 사야한다’ 끝이에요. 필요에 의한 관점이 아니라 ‘좋다, 싫다’의 개념인 거죠. 그런 본능적인 판단력, 호불호가 방송계에선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는 스스로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유쾌한 사람은 더더욱 못된다고 했다. ‘관계의 힘’이 주제인 올해 ‘세계여성경제포럼’의 연사로는 자질이 부족하지 않나 고개를 갸웃거릴만하다. 최고의 연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 건 섭외 과정을 통해서다.

사실 나 PD는 연사 제안을 두 차례 거절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이제 막 선보인 상황에서 다른 일에 신경을 쏟을만한 여유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마음을 돌린 건 ‘1박2일’ 연출 당시 연을 맺은 이데일리 문화부 막내 기자의 전화를 받고서다. “그다지 깊은 관계는 아니지만 아는 사람이고 오래 본 사이예요. 제가 분명 두 번인가 거절한 일인데 오랜만에 전화해서 회사 일로 부탁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잖아요. 그 분의 면을 세워주고 싶었어요. 그런 게 또 예의라고 생각하고요.”

그에게서 찾은 최고의 미덕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함,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배려심’이었다. ‘꽃보다 청춘’이 종영하기도 전에 바투 다음 프로그램을 기획해 촬영에 나선 이유도 “그렇지 않으면 회사에서 곤란해질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수많은 스태프를 거느리는 수장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역시 ‘멘탈 컨트롤’이란다. 마음을 헤아려 그 사람이 최고의 컨디션에서 일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얼마전에는 ‘꽃보다 할배’ 이순재와 신구가 주인공 노만 역에 더블 캐스팅된 연극 ‘황금 연못’을 선생님 두 분의 첫 공연에 맞춰 두 번씩 보기도 했다. “거절을 잘 못한다”는 그에게 짓궃은 질문 하나를 던져봤다. “관계를 맺으면서 난관에 부딪쳤을 때. 예를 들어 성과와 신뢰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둘 다 가져가야 해요. 죽을 각오를 다 해서”라고 말했다.

나 PD의 회의실 칠판에는 “사람이 전 재산이다”라는 글귀가 표어처럼 적혀 있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말도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한때는 내가 잘나서 잘됐겠지 생각했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대단한 천재가 아닌 이상 이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더라고요. 제 부족한 부분을 좋은 선배, 동료, 친구가 채워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에 대한 무게감을 크게 느껴요. 조금씩 나이가 들며 알게 된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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