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적대적 공존

  • 등록 2013-12-03 오전 6:18:14

    수정 2013-12-03 오전 6:18:14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차기대선에 대한 출마의지를 보였을 때 기자는 적대적 공존을 떠올렸다. 이런 말을 하면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다는 예상을, 대선 후보까지 지낸 문 의원이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친노(친노무현) 수장인 문 의원은 박 대통령을 향해 “공안정치를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 됐다”고 하면서 또 정국의 중심에 섰다.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의 반응은 빨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입을 빌려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품격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친박 최고실세로 꼽히는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정략과 한풀이가 우선”이라면서 ‘문재인 때리기’에 혈안이 됐다.

친박과 친노는 대선 이후 지난 1년 내내 서로를 헐뜯었다. 대선은 지난해 끝났지만 결코 끝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친노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만 주장해왔고, 친박은 정치적으로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했다. 기자는 대선개입 의혹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다른 의제들을 모두 버리면서까지 ‘올인’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그 사이 공히 매파(강경파)로 불리는 두 계파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커졌다. 새누리당은 친박실세의 한마디면 교통정리가 끝나고, 민주당은 지도부가 친노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지난 1년간 겉으로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지만 속으로는 밀월을 즐겼을지 모를 일이다. 서슬퍼렇던 미·소 냉전때 군비경쟁을 매개로 한 적대적 공존을 떠올릴 법하다.

그렇다고 두 계파에 대한 국민들의 상식적인 지지까지 올라간 것은 아니다. 제3세력인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공고한 지지율이 객관적인 자료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달 말 안철수신당에 대한 지지도는 26.8%로 민주당(12.6%) 보다 두 배 이상 앞섰다. 새누리당(43.1%)도 맹추격 중이다.

안 의원은 지난 4월 국회 입성후 보여준 게 없다는 여야의 공통된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상승세다. 국민들은 안 의원에 대한 ‘새정치’ 기대에 앞서 친박과 친노 등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두 계파가 벌이는 정쟁을 두고 민생과 완전히 동떨어졌다는 점에서 ‘사이비’ 같다는 지적도 했다. 적대적 공존을 넘어 아예 한통속이라는 관측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친박과 친노는 눈앞에 보이는 골수 지지층의 달콤한 환호 대신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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