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술자리 줄었지만..비상경영도 '자율'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최태원 회장이 회삿돈 횡령 혐의로 구속된 후 SK(003600)그룹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회장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인사와 SK텔레콤, SK네트웍스 등 주력 계열사에 대한 인사를 마무리했지만 분위기는 침통함 그 자체다.

SK행복날개 로고

SK그룹은 이미 지난해 말 관계사별 독립경영을 강화하는 새로운 경영체제인 ‘따로 또 같이 3.0’을 도입하고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김창근 의장(부회장)을 선임했지만, 최 회장 공백으로 칼라힐과의 글로벌 전략 펀드 구성 등 글로벌 사업에서 타격이 예상된다.

1심 재판부가 최 회장이 지배력을 이용해 회사 재산을 단기간 내에 사적인 목적에 활용하는 ‘기업 사유화’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면서,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는 점도 비상경영이 불가피한 이유다.

최태원 회장은 법원의 선고 직후 “이 일에 정말 연관이 안 돼 있고, 잘 모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지난 5일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최종적인 법원 판단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고위 임원들 골프장, 술자리 금지 등 논의..계열사 자율로

지난 1일 회장 구속 이후 처음으로 열린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는 고위 임원들의 골프장 회동 및 술자리 금지, 출근 시간 조정 등 비상 시기에 걸맞은 방안들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임원은 “한 참석자가 출근 시간 앞당기기, 술자리 및 골프장 회동 금지 등을 제안했지만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면서 “SK그룹의 자율경영 문화가 비상 시기에도 적용된다고 봐달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른 그룹에서 오너 사건이 발생했을 때와 비교하면 SK식 대처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얼마 전 승진인사 역시 회장의 의중을 반영해 아무 때나 하는 국내 대기업의 인사 관행에서 벗어나 관계사 별로 이사회 및 CEO의 책임하에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회장이 구속됐을 때 해당 회사 임직원들이 위기의식을 갖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SK그룹은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했을 뿐 개인의 행동 양식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7만 명에 달하는 그룹 임직원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에 주요 계열사 대표 선임

한편 SK그룹은 2007년 지주회사 출범 이후 최태원 회장과 지주회사, 최재원 수석부회장을 포함해 김신배 부회장, 정만원 부회장 등 원로급 부회장단 중심으로 운영됐지만 2013년 조직개편 및 임원인사를 마무리하면서 젊어졌다.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각 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에 하성민 SK텔레콤(017670) 사장(전략위원회 위원장), 구자영 SK이노베이션(096770) 부회장(글로벌성장위원회 위원장), 정철길 SK C&C(034730) 사장(윤리경영위원회 위원장) 등 계열사 대표들이 겸직하면서 그룹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계열사별 현안에 맞는 정책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