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세월호法]①도심속 '세월호' 세종대로 172번지

  • 등록 2014-08-04 오전 6:00:00

    수정 2014-08-04 오전 8:23:41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7·30재보선 결과가 정치권의 지형을 요동치게 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이 더욱 표류하고 있다. 여당에선 ‘야당과의 협상에 끌려가선 안된다’는 강경론이 고개를 드는 반면 선거기간 정부책임론을 부각하기 바빴던 야당은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에 놓였다. 정치권이 재보선 결과에 저마다 해석을 내놓으며 또다시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이에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은 여전히 폭염과 장마에 맞서 목숨 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 111일.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세월호특별법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우리 사회에 던져진 핵심 과제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음식물 섭취 없이 물만 드셔서 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요. 물만 먹으면 설사를 하고 그렇게 하루에 7~8번은 설사를 해요. 본인 의지는 괜찮다고 하는데 의학적 판단으로는 기력이 거의 다 소진된 상태입니다. (세월호특별법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극단적인 상황까지도 예상되네요.”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사가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인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의 건강 상태를 체크한 후 내린 진단이다. 김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나선지도 벌써 19일째(4일 현재 기준 22일째). 함께하던 가족들은 모두 탈진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작은 공동체

김영오씨가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시작한 단식은 이날로 19일째가 됐다. (사진=강신우 기자)
광화문 광장이 있는 서울 세종대로 172번지는 도심 속 작은 공동체였다. 오후 3시께 기온이 35도를 웃돌며 폭염경보가 내려진 가운데서도 김 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외로운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천막 주위로 ‘ㅁ’자 형태로 옹기종기 모인 대여섯 동의 천막들이 있었다. 단식농성에 참여하고 유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온 종교·시민단체 참가자들이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대형 천 조각에 ‘수사권·기소권 보장 4·16특별법 제정’이라는 글귀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물감에 젖은 천 조각을 말리며 ‘임형주의 천개의 바람’ 노래를 불렀다. 어린아이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됐다.

여름 햇살에 새까맣게 탄 유병제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대구대 교수)은 기자와 만나 “김 씨가 벌써 19일째 단식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달픈 마음만 든다”며 “사회나 정부가 무관심하고 아무 대책도 없어 보여 유가족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왔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오는 4일 이곳 광화문 광장에서 다른 교수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500만 서명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시민단체들이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사진=강신우 기자)
광화문광장 한쪽에선 ‘하늘로 간 수학여행’이라는 제목의 4·16 참사 희생 학생 사진전도 열렸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40인치 텔레비전에도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마지막 영상이 비쳤다.

지나가던 시민들 몇몇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들의 발걸음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는 곳으로 향했다. 안산시민대책위원회에서 나온 한 자원봉사자는 ‘유가족 특별법에는 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이 없습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유가족들이 보상을 위해 농성한다’는 사회적 편견과도 맞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자원봉사자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이 이제 곧 500만명이 된다고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15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350만명의 서명을 국회에 전달한 바 있다. 그러나 보름이 훌쩍 넘은 지금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은 기약이 없다.

유가족들의 목표는 ‘1000만인 서명’이지만 목표치가 달상되기 전에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밝혀지고 더 이상 이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 하나일 것이다. 서명을 마친 권 모(29·직장인)씨는 “여야가 서로 싸우기만 해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이 어려웠는데, 선거까지 끝나니까 언제 (세월호특별법이) 만들어질지 더 까마득해 보인다”고 말했다. 떠나는 그의 손엔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들려 있었다.

오후 5시께 기자의 휴대폰에는 ‘세월호 청문회 증인을 두고 여야가 이견 차를 보이면서 오는 4일 예정돼 있던 청문회 개최가 무산됐다’는 속보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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