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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법원은 우촌초등학교를 운영하는 일광학원 제기한 영어몰입교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교육 당국의 영어몰입교육 금지 처분에 반발해 일광학원이 서울시 성북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소송에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처분으로 발생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우촌초는 본안 소송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영어몰입교육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우촌초는 영어 수업이 전면 금지돼 있는 1·2학년 정규교육과정에 영어 수업은 물론 체육, 수학 등 영어외 수업도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교육 과정을 편성했다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시정 처분을 받자 지난해 12월 소송을 냈다.
교육부 “사립초 영어교육 불허” Vs. 학부모 “학원 보내라는 거냐”
교육부 입장은 확고하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2014 업무보고에서 유치원 정규 교육과정 내 영어몰입교육을 금지하고 일부 사립초등학교의 비정상적인 영어 수업 운영에 대해선 정상화 조치를 추진하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교육부는 관련 규정을 거론하며 영어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고시 형태인 ‘초·중등교육과정’은 초등학교 1·2학년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수업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3학년부턴 영어 수업 편성이 허용되지만 영어몰입교육 수업은 3· 4학년은 1주일에 2시간, 5·6학년은 1주일에 3시간 내에서 제한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또 검인정 교과서가 아닌 외국 교과서를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말 실시한 사립초 영어 교육 실태 조사결과 조사대상 40개 교 중 30개 사립초등학교가 1·2학년 영어 수업을 비롯해 규정을 넘어선 영어몰입교육, 검인정을 거치지 않은 외국 교과서를 사용 등으로 적발됐다.
사립초 학부모들은 정부가 그동안 사실상 용인해온 영어 교육과정을 뒤늦게 문제 삼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작년 12월 영훈초 학부모들은 교육부가 영어몰입교육 축소를 지시하자 ‘교육부가 승인한 교육과정에 따라 6년간 영어 교육을 받기로 했는데 뒤늦게 이를 금지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며 교육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아울러 초등학교에서 영어 교육이 제한되면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어 교육도 ‘부익부·빈익빈’ 우려..교육과정 재설계 해야
전문가들은 교육부가 영어 교육과정 확대에 부정적인 것은 현실적으로 공립초까지 사립초 수준의 영어 수업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사립초의 영어 교육과정을 허용할 경우 영어 교육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일부 사립초등학교에만 영어 수업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특혜”라며 “이를 허용하려면 형평성 차원에서 공립초등학교까지 영어 교육과정을 확대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공립초의 영어 교육과정을 사립초 수준까지 확대하기 위해선 원어민 교사나 영어전문 교사를 대대적으로 증원하고 시설 또한 확충해야 하는 만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학습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어린이들에게 과도한 외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학업부담만 늘릴 뿐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슬기 사교육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연구원은 “모국어 수준이 높을수록 영어학습 능력도 우수하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라며 “유아기 영어 교육을 받은 아이의 창의성 점수가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전했다.
교육계에선 초등학교 영어 교육과정이 17년전에 만들어진 만큼 현실에 맞춰 영어 교육과정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준언 숭실대 영어영문과 교수는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한 수요와 교육 환경이 십수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며 “늘어나는 영어 교육에 대한 수요와 학습권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