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원식 기자] “서류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영수증을 내놓으라고 하니 영수증도 주더군요. 하지만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하기로 했죠. 핸드폰 번호가 있더라고요. 물론 적혀 있는 핸드폰 번호를 무시하고 직접 회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번호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잖아요?”
| ▲박영규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국 4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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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자회사 직원의 대형 사기를 최초로 적발한 박영규(
사진) 금감원 저축은행검사국 4팀장은 저축은행 사태로 탄생한 상시감시시스템과 끈질긴 추적 끝에 거둔 성과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수현 금감원장이 금융사 부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 뒤 지난해 초 구축된 ‘저축은행상시감시 시스템’은 이번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스템은 저축은행의 불법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모든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 현황 자료를 받아 이상 징후를 추출하는 장치다. 몇몇 징후가 나오면 각 검사팀에 뿌려져 검사역들이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식이다.
이 시스템이 금감원 내에서도 유독 저축은행검사국에서 활용되고 있는 이유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교훈 때문이다. 온갖 위조 서류로 위장해 불법·부당 대출을 일삼던 일부 저축은행을 검사하다보니 상시 감시 시스템이 절실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
박영규 팀장이 이번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도 지난해 12월 상시감시시스템이 이상 징후를 포착한 뒤부터다. 박 팀장은 한 여성 팀원 한 명과 함께 사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팀원 역시 금감원 내 검사국에서만 12년 일한 베테랑이었다. 이 팀원은 검사 내내 자금 흐름을 쫓았고 박 팀장은 대출 관련 서류의 진위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사기 정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몇 번이나 불법 대출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들기도 했습니다. 매출채권이 위조된 게 아닌가 싶어서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영수증을 내놓더군요. 담당자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니 실제 매출이 있다고 해 ‘아닌가’ 싶었죠.”
하지만 그의 의심병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분명 자금 흐름이 이상했어요.” 박 팀장은 직접 KT ENS에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서류에 있는 번호가 아닌 대표 번호로 전화해 담당자와 통화했다. 하지만 서류에 적힌 담당자가 사기를 벌인 직원이었으니 또 거짓 ‘증언’이 나왔다. 결국 박 팀장은 KT ENS 내 다른 직원과 통화한 끝에 사기가 확실하다고 판단하게 됐다.
그는 “서류도 담당자도 위조됐으니 금융사가 이 사실을 알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는 자금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꼼꼼하게 자금 흐름을 살펴준 덕분에 이번 사건을 잡아내게 된 것 같다”며 이번 검사를 함께 진행한 팀원을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