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사이판으로 떠나는 초등학교 수학여행

  • 등록 2013-06-21 오전 7:00:00

    수정 2013-06-21 오전 7:00:00

서울의 어느 사립 초등학교에서 6학년들의 수학여행을 사이판으로 떠나기로 한 모양이다. 그런 내용을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이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졸업 수학여행이라 치더라도 초등학생들에게는 지나친 게 아니냐는 것이 논란의 초점이다.

물론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사이판으로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어느 지역이라도 보고, 느끼고, 배울 만한 소재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판 역시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큼 아름다운 여행지라는 점에서 수학여행 대상에서 미리 제외시켜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연학습 가치만 해도 나름대로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여행 경비다. 1인당 대략 120만원 안팎에 이르는 적잖은 경비를 부담하면서까지 굳이 사이판으로 수학여행을 갈 필요가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추천할 만한 여행지가 한두 곳이 아니지 않는가. 초등학교의 수학여행조차 남에게 과시하려는 거품이 끼고 있다는 증거다.

학교 당국이 가정통신문에 고지한 대로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세계 문화를 이해시키겠다는 취지를 납득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학습에도 일정한 단계가 있듯이 수학여행에도 상식적인 최소한의 단계가 있는 법이다. 더욱이 어려서부터 빈부격차로 인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교육적인 결정이라고 판단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성인들도 신혼여행으로나 갈 수 있는 곳이 사이판이다.

학부모들이 설문조사를 통해 자율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전체 학부모들이 흔쾌히 찬성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인터넷에 문제의 글을 띄웠던 학부모도 이런 결정이 지나치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다만 몇 명이라도 금전적 부담으로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면 학부모에게나 어린 학생에게나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초·중·고교의 수학여행 경비 차이가 현저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지적되는 마당이다. 어느 고교에서는 유럽여행을 다녀왔다고도 하고 일본이나 중국, 홍콩을 다녀오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설사 자율적으로 결정했다고 해서 무조건 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전만능으로 흐르는 우리 여건에서 자칫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봐서도 그러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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