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유예론·교과서 업체 불만 제기..AI교과서 논란 확산

전국교육감협의회서 울산·충남교육감 유예론 주장
“부작용 우려되니 시범운영하면서 보완·확대하자”
세수 펑크, 교부금 감소도 우려…비용문제도 지적
검정 참여 발행사 절반이 탈락..소송 제기 가능성도
교육부 “이미 선도학교서 시범운영…유예론 설득”
  • 등록 2024-09-30 오전 5:20:00

    수정 2024-09-30 오전 5:20:00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 도입되는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에 대한 교육계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일부 교육감들이 유예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일정 기간 시범운영을 해본 뒤 전면 도입하자는 얘기다. 그간 일부 교원단체들이 AIDT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지만, 교육감 차원에서 AIDT 도입을 미루자는 주장은 이번에 처음 제기됐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6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추진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학부모 불안, 예산 문제 등 지적

29일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대구 수성스퀘어에서 열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교육계 관계자는 “천창수 울산교육감과 김지철 충남교육감이 AIDT 전면 도입을 연기하자고 주장했다”며 “학부모·교사 불안, 예산 문제, 학습 데이터 유출 문제 등을 이유로 시범 적용해보고 점차 확대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내년 신학기 초3∼4학년, 중1, 고1부터 시작해 2026년에는 초5∼6학년, 중2, 2027년에는 중3 등에 단계적으로 AIDT를 적용한다. 과목별로는 2025년엔 수학·영어·정보, 2026년엔 국어·사회·과학·기술·가정, 2027년엔 역사, 2028년엔 고교 공통국어·통합사회·한국사·통합과학에 AIDT가 도입된다.

일부 교육감들은 이날 총회에서 학부모·교사 불안과 예산 문제를 거론하며 연기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교육청 관계자는 “디지털기기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 등 부작용을 우려해 전면 도입을 연기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의견”이라고 했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도 “AIDT 도입에 따른 예산 문제를 걱정하는 차원에서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우려는 최근 세수 추계가 29조 이상 빗나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재정 당국의 추계보다 세수가 30조원 가까이 줄면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도 5조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30조에 달하는 세수가 펑크나면서 교육감들의 교부금 감소 우려가 크다”라며 “늘봄학교나 유보통합 예산을 줄일 수는 없으니 AIDT 도입을 미뤄 예산 지출을 줄이자는 목소리였다”고 말했다.

검정 참여 발행사 절반이 탈락

여기에 더해 최근 진행된 AIDT 검정 결과 발행사들이 무더기 탈락하면서 소송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교과목별로 △수학 5곳 △정보 4곳 △영어 9곳의 발행사가 검정을 통과했다. 중복 합격한 발행사를 제외하면 검정에 참여한 21곳 중 52%(11곳)만 검정을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AIDT 검정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영어를,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수학·정보교과를 담당했다. 교육부는 다음 달 23일까지 이의신청을 받아 이를 심사한 뒤 오는 11월 29일 검정 결과를 최종 확정한다.

교육부는 이의신청 결과 발행사가 추가되지 않더라도 이번 검정 결과를 고수할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검정기관(평가원·창의재단)의 평가 결과를 존중할 수밖에 없으며 검정 기관에 방향을 정해 주는 등의 관여는 불가하다”고 했다. 또 다른 교육부 관계자도 “엄정하게 심사했다고 보고 있기에 향후 검정 결과가 확정되면 통과된 교과서만으로 AIDT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일정 기간 시범운영 기간을 두자는 울산·충남교육청의 주장에 대해서도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디지털 기반 선도학교를 작년 하반기 351개교 운영한 데 이어 올해는 선도학교 수를 1046개교로 늘렸다”며 “시범운영 기간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으며 내년 전면 도입돼도 서책형 교과서와 병행하기에 교사들로서는 서책으로 수업하면서 AIDT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예론을 주장하는 교육감들과 꾸준히 소통해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발비에 수십억 원을 투입했음에도 탈락한 발행사들이 교육부 상대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가 올해로 종료되는 게 아니기에 이런 우려를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2026년에는 초5∼6학년, 중2로, 2027년에는 중3 등으로 단계적으로 디지털교과서 적용이 확대되기에 탈락한 발행사들도 계속 검정 신청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를 상대로 실제 소송에 나설 업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강은희 협의회장(대구시교육감)이 지난 26일 대구 수성구 수성스퀘어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시도 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교부금 주는데 교과서비까지 올라갈 판”

AIDT는 구독형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발행사가 학교와 계약한 권수에 따라 구독료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25년도 예산안 공통 요구 자료’를 보면 교육부는 국립학교 33곳의 교과서 예산을 올해(23억1200만원)보다 70.7% 인상한 39억4700만원으로 책정했다. AIDT 도입이 반영되면서 교과서 예산이 증액된 것이다.

교육계는 17개 시도교육청에서도 교육부가 국립학교에 편성한 예산과 비슷한 수준에서 교과서 지원 예산을 늘릴 공산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교육감들이 AIDT 도입에 따른 비용에 부담감을 느끼는 이유다.

전국교사노동조합(교사노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원단체들이 AIDT에 반발하고 있는 점도 교육부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서울교사노조는 교사 1794명을 대상으로 지난 9~10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참여 교사 94%가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스페인 발렌시아대는 지난해 12월 디지털 독서가 종이책을 읽을 때만큼 독해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며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교육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아직 검증된 결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교조 역시 “지난해 교육부가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AI 디지털교과서와 서책형 모두 8월 말 검정 심사를 완료하겠다는 로드맵을 냈지만 일정이 미뤄졌다”며 “당초 6개월로 제시했던 AI 디지털교과서 현장 적합성 검토 시한이 3개월로 반토막이 났다”면서 내년 신학기 전면 도입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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