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프랑스계 미국 여성 작가인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생애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다섯 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나 구박과 학대를 받고 자랐다. 11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했고,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조신한 행동을 강요받으며 자랐다.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성향이었던 그녀는 이러한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이른 나이에 결혼하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던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결국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그림을 그리며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새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갈망을 표현한 ‘사랑의 새(oiseau amoureux)’에는 작가의 불우한 환경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네덜란드 출신 작가인 카렐 아펠(Karel Appel, 1921~2006)은 학교에서 유대인 친구의 도망을 도왔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도망자 생활을 해야 했다. 도피생활을 이어가다 1950년대에 파리에 정착한 그는 ‘코브라’(CoBrA)라고 불리는 새로운 예술가 그룹을 만들었다. 전통적인 예술 규범을 벗어나 자유로움과 재미를 작품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는 붓을 사용하지 않고 판때기에 물감을 묻혀 바르기도 하는 등 대담하고 표현적인 스타일로 예술계에 불멸의 흔적을 남겼다.
| 카렐 아펠(왼쪽)과 니키 드 생팔(사진=오페라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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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카렐 아펠과 니키 드 생팔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오는 10월 7일까지 서울 강남구 오페라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2인전 ‘새로운 출발, 아이의 눈으로: 카렐 아펠 & 니키 드 생팔’이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색감을 사용하는 두 사람의 그림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세계를 연상시킨다. 사회적·개인적인 억압을 탈피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김우진 큐레이터는 “아펠과 생팔이 어떤 시도와 도전을 하면서 새로운 작품들을 탄생시켰는지 소개하고자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 아펠의 ‘농가의 소년과 날고있는 개’(왼)와 생팔의 나나 연작 중 하나인 ‘I Am Upside Down’(사진=오페라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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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팔은 대형 조각 작품을 창작하며 여성성, 사회 문제, 인간의 상태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개방적이고 도발적인 유쾌함이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작은 조각 작품 나나(Nanas) 연작이다. 밝은색으로 풍만한 여성의 피사체를 표현한 작품으로 기쁨, 힘, 해방을 상징하고 있다. 특히 그녀의 조각은 폴리에스터, 레진, 일상에서 발견된 오브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다. 전시장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색채로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조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아펠은 미술사적인 자유를 갈망하면서 강렬하고 원색적인 색채를 사용해 다이나믹한 표현을 추구했다. ‘헤드 온 더 씨’(Head one the Sea)와 ‘페르소나주’(Personnages)에서는 거친 붓터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에는 어린이의 순박한 감성이 담겨 있다. ‘농가의 소년과 날고있는 개’(Garcon de ferme et chien volant)에서는 상단에 동물을, 하단에는 소년을 그렸다. 얼핏 보면 강아지처럼도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동물이며 동물의 별자리와 유사한 느낌도 받는다.
김 큐레이터는 “카펠은 생팔에 비해 국내에는 조금 덜 알려진 작가”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작가의 예술사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남긴 생동과 활기가 가득찬 작품들을 만나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 니키 드 생팔의 ‘Oiseau amoureux’(사진=오페라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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