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방한] 세월호 듣고 또 듣고…한국 '큰상처' 보듬다

방한 내내 이어진 '세월호 보듬기'
숙소 찾은 이승현 군 아버지에 '프란치스코' 이름 세례
노란리본 달고 방한 기간 내내 희생자 위해 기도
  • 등록 2014-08-18 오전 6:42:00

    수정 2014-08-18 오전 8:17:54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 이호진 씨를 직접 세례했다. 한국인 첫 세례인이 세월호 유족이 된 것이다(사진=이호진 씨 페이스북).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공동취재단] 17일 오전 7시 30분.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가 세례를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머리를 맞대고 직접 세례를 했다. 숙소인 서울 종로구 궁정동 주한 교황대사관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첫 번째 한국인인 셈이다. 이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같은 ‘프란치스코’. 이씨의 세례식을 옆에서 지켜본 딸 아름 씨는 “교황께 세례를 받아서라도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아빠를 이해하고,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란다”며 “교황께서 아빠를 기억해주신다면 언젠가는 바티칸에 있는 사람들,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가 열린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유족·생존학생 10여명과 교황을 만났을 때 세례를 부탁했다. 교황은 흔쾌히 수락했다.

“기억하고 있다”던 교황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교황은 한국에 머물며 하루도 빠짐없이 세월호 유족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특별한 해결책을 내놓은 건 아니다. 유족이 손을 내밀면 잡아주고, 그들이 울먹이면 자신의 손을 가슴에 대고 마음으로 들었다. 한국사회가 최근 가장 크게 입은 상처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진심 어린 위로다.

▲“희생자들 기억하고 있다”

교황은 한국땅을 밟자마자 세월호 유족을 챙겼다. 14일 오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비행기에서 내려온 교황은 눈물을 흘리는, 세월호 희생자인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어머니 송경옥 씨의 손을 꼭 잡았다. 송씨의 손을 오른손으로 잡고, 자신의 왼손은 가슴에 댔다. 이 자리에는 남 교사의 어머니 송씨와 아버지 남수현 씨, 사제의 길을 꿈꾸던 단원고 희생 학생 박성호 군의 아버지 박윤오 씨, 일반인 희생자 정원재 씨의 부인 김봉희 씨 등 네 명이 교황을 영접하러 나왔다.

교황은 대중 미사에서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기도했다.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삼종기도에서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고 기도했다. ‘특히’라는 말로 강조했고 먼저 언급했다.

교황은 방한 사흘 내내 세월호 유족의 상처를 보듬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또 들었으며, 손을 내밀면 따뜻하게 잡아줬다(사진=교황방한준비위원회, 공동취재단).
▲노란리본 달고 미사

더 나아가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가 통합되길 바랐다. 교황은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이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이는 유족을 넘어 한국사회에 던진 치유의 메시지다. 교황은 5만명이 모인 미사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오기도 했다. 교황은 이날 미사 직전 유족에게 받은 선물을 확인한 후 직접 노란 리본을 달았다.

앞서 교황은 단원고 희생 학생 김빛나라 양의 아버지 김병권 세월호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유족과 생존학생 10명을 10분간 비공개로 만나 이들의 말을 경청하며 슬픔을 다독였다.

▲카퍼레이드에서 내려선 곳도 ‘세월호’

세월호 유족과 한 약속도 지켰다. “파파!” 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 단원고 희생 학생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교황을 애타게 찾았다.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집전에 앞서 교황이 카퍼레이드를 할 때다. 이 소리를 들은 교황은 통역을 해주던 신부가 세월호 유족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하자 차에서 내렸다. 그러곤 김씨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위로를 건넸다. 김씨는 교황의 손등에 입을 맞춘 뒤 친필로 쓴 편지를 담은 노란색 봉투를 교황에게 전달하며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시고 기도해주달라”고 말했다. 교황은 김씨가 건넨 노란색 편지를 수행단에 건네지 않고 자신의 오른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교황이 이날 차에서 내린 곳도 세월호 유족들이 모여 있는 자리가 유일했다. 15일 세월호 유족이 ‘단식 중인 유민이 아버지를 안아달라’고 한 부탁을 들어준 것이다. 교황청 대변인인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이 몸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보듬기’로 이어진 방한 행보

교황의 ‘세월호 보듬기’에 시민들은 “치유의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참된 지도자를 만났다”는 얘기도 나왔다. 교황을 영접한 단원고 남 교사의 아버지 남씨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문에 ‘미움 있는 곳에 사랑을, 분열 있는 곳에 일치를’이란 구절이 있다. 그의 이름을 따온 교황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시복식 현장에서 교황의 세월호 유족 위로를 지켜본 경기 광주시에서 온 안진우 씨는 “교황이 보고 싶어 새벽에 두 딸과 아내와 함께 왔다”며 “교황의 미소만 봐도 모든 억울함이 사라지는 것 같다. 정부가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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