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전국에서 때아닌 의료 공백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4주째 접어든 현재, 대형병원은 마비된데다 의대 교수들은 사직을 결의했다. 이에 환자들의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군의관을 비롯해 각 지역의 공보의까지 의료 현장에 투입되면서 의료 취약지역에서는 이들의 부재로 또 다른 의료 공백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며 ‘언발에 오줌누기식’이라는 지적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병동 축소 및 통폐합 조치를 단행한 한편 특정 과에 대해서는 응급실 진료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공지까지 올라왔다.
대전의 경우 5개 주요 대학·종합병원이 병상 가동률을 평소의 50~60% 수준으로 줄이고 일부 병동을 폐쇄하는 등 비상 진료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파행적인 운영이 언제 정상화될지는 기약조차 없다. 대전의 상급병원인 충남대병원은 응급실 내 중환자실이 100%를 넘기면서 중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 각 권역별 상급종합병원에 군의관과 공보의가 긴급 파견됐지만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농·어촌 등 의료 취약지대에서 근무 중인 공보의가 근무지를 비우면서 또 다른 의료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 대부분 의사 1명이 근무하는 농·어촌 지역의 보건지소에서는 공보의 차출에 따른 진료 중단으로 주민 불편이 속출하고 있다. 진료·수술 급감에 따른 대형병원들의 경영 악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몇몇 대형병원들이 경영악화로 임금 체불까지 우려해야 할 상황에 놓이자 해당 지자체가 재난관리기금을 지원하는 등 전국에서 코로나 펜데믹 사태 때보다 더 힘든 비상 상황을 온몸으로 겪고 있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집단 사직 움직임이 일자 정부는 “환자를 등지고 떠난다면 남아 있는 전공의와 의대생은 물론 국민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미 정부와 의료계는 상호 신뢰를 상실한 상태로 대화와 타협 보다는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국민들과 환자들만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놓고,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비롯해 환자 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챙기는 의료계, 법·제도적 정비를 외면한 정치권 모두가 공범이다. 또 지역 의료계가 붕괴된 상황에서도 정치권과 정부 눈치를 보면서 현실을 외면했던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필수의료 시스템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단순하게 건강보험 수가 일부를 올려주고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지역 의료계를 떠난 의사들이 돌아온다고 확답할 수 없다. 반면 의료계의 요구안인 의료사고의 법적 부담 완화, 전문의 중심의 의료체계 구축, 의대 교수 증원,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 전공의 교육 개선이 시행된다고 해도 이들이 다시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고 믿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한국 의료시스템은 근본적인 개혁의 시간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50년, 100년을 앞을 내다보는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료계도 당장 생사의 기로에 있는 환자를 외면하지 말고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한다. 정치권도 선거를 앞두고 표 구걸에 나서지 말고 개혁에 앞장서길 바란다. 국민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