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났습니다]'존봉준' 존리 "타이밍 맞출 수 있단 착각 버려야"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인터뷰①
“금융문맹 탈출 희망 봤지만 갈길 멀어”
매크로 보단 우수한 종목 발굴 집중
가상화폐 열풍 글쎄…“복리의 마법 믿어야”
  • 등록 2021-06-08 오전 5:39:00

    수정 2021-06-08 오전 9:20:09

[이데일리 김윤지 기자] “시장은 겸손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투자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해요. 가격을 맞추는 게 주식 투자가 아닙니다. 그 시간에 개별 종목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게 더 낫죠.”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난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동학개미’(개인 투자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불린다. 1990년대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크락(Scudder Stevens & Clark)에서 코리아펀드를 운용했던, 월가의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인 그는 2018년부터 ‘경제독립’이란 문구가 적힌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금융 교육을 하고 있다. 투자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차와 집에 집착하지 말고, 커피 사 먹을 돈으로 주식을 사라”고 외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가 늘 강조하는 ‘장기 투자’를 대한민국 금융 교육에 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장기 투자가 언젠가 빛을 보듯, 존 리의 꾸준한 ‘쓴소리’도 지난해 진가를 발휘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각종 지수가 곤두박질치는 패닉장에서 대다수 전문가는 현금을 챙길 때라고 조언했지만, 존 리 대표는 가격 부담이 없으니 좋은 주식을 살 때라고 말했다. 이후 주가가 고공행진하면서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이 옳았다. 동학 대장 ‘존봉준’(존리+전봉준)이란 별칭을 얻은 이유기도 하다.

“높은 회전율, 고질적 문제점…단타족 벗어나야”

1년 새 코스피 지수는 껑충 뛰어올라 ‘삼천피’(코스피 3000) 시대를 열었다. 개인 투자자는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증시의 주축을 이루게 됐다. 가격이 오르면 쫓아서 매수하고, 가격이 빠지면 놀라 매도하느라 늘 손해만 보던 ‘개미’가 아니었다. 존 리 대표는 일본처럼 ‘금융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봤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주식에 대한 편견이 어느 정도 사라졌고, 공부하는 ‘개미’도 많아요. 길 가던 중학생들이 절 알아보고 ‘군것질 대신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는 기특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자주 샀다 팔았다 해요. 매일 스마트폰을 보면서 투자 타이밍을 노린다면 그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에요. 그럼 부자가 될 수 없어요.”

존 리 대표가 말하는 투자의 원칙은 명확하다. 장기적인 금융 계획을 짜고, 목표를 정한 다음 자신의 투자 철학에 따라 지배구조부터 재무제표까지 꼼꼼하게 따진 다음 매수하고, 되도록 오래 쥐고 있어야 한다. ‘손절’(손해 매도)도 ‘익절’(이익 매도)도 권하지 않는다. 주가는 거시 경제에 따라 오르내리는데, 종목 자체의 펀더멘털이 그대로라면 굳이 매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면 주가 조정은 오히려 저가 매수 기회가 된다.

역으로 실패하는 투자는 단기간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다. 이는 가격을 예측할 수 있다는 판단이 전제되는데, 시장의 변동성을 함부로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때문에 노후 대비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개인 투자자라면 빚을 내서 투자를 하거나 그저 남의 말만 듣고 투자하는 것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부자 되기 위해선 인내·철학 필요”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다들 수익률에 대해 말하잖아요. 주식 시장 방향성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 의미가 없어요. 마라톤을 하는데 100m 달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투자는 평생 해야 하는데, 그러다간 금방 지쳐요. 스스로 장기 투자할 기업을 찾아 꾸준히 투자하는 게 중요해요.”

최근 증권가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논쟁으로 뜨겁다. 그동안 증시를 떠받치던 자금이 마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다. 존 리 대표는 노후를 준비하는 20~30대 투자자라면 거시 경제에 따라 투자 전략을 수정하기보다 ‘좋은 주식’ 고르기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일반 투자자가 행동하기도 전에 이미 시장에 빠르게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해처럼 모든 주식이 떨어지더라도 당초 펀더멘털이 탄탄한 주식을 샀다면 언젠가 제 가격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도 있다.

존 리 대표는 ‘인내와 철학’이 투자자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늘 강조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꾸준히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최근 열풍처럼 번진 공모주나 가상화폐도 ‘부자 되기’와 거리가 먼 투자처라고 지적했다. 거액의 증거금으로 청약하는 것이 아니라면 균등 배정으로 1주를 받아 금방 내다 파는 데 그칠 뿐이고, 현재 사실상 수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비트코인은 내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아직 이르기 때문이다.

“원리금 보장형, 퇴직연금서 피해야 할 상품”

개인형 퇴직연금을 통해 투자에 나서는 방법을 제안했다. 여유자금이 없는 20~30대가 빚 없이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금융 상품을 고를 땐 투자 설명서와 운용보고서를 꼼꼼하게 살펴 회전율과 운용사의 전략과 총 보수를 살펴볼 것을 권했다. ‘원금 보장형’ 상품은 되도록 지양하라고 말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만큼 수익률을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엔 보잘것없다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효과를 절감하는 것이 복리 효과”라면서 72의 법칙을 예로 들었다. 복리로 자산이 2배 되는 시점이 언제인지 가늠할 수 있는 계산법이다. 1억원의 자금으로 매년 6% 수익률을 올린다면 2억원으로 불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년이다. 하지만 수익률이 2%로 내려앉는다면 36년이 필요하다. 수익률 차이는 4%포인트이지만 3배나 된다.

단순히 수치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엔 ‘401K 백만장자(Millionaire)’란 말이 있다. 401K는 우리나라의 개인형퇴직연금(IRP)과 같은 미국의 퇴직연금계좌다. 미국에서는 이 401K에 꾸준히 적립하고 투자해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의 퇴직연금으로 은퇴하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

원금보장형 상품 비중이 높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주식으로 옮겨간다면 증시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로 연결될 수 있다. 기업들은 자금 조달이 수월해진다. 존 리 대표는 “애플,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생태계가 조성됐기 때문”이라면서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주식 비중이 늘어난다면 충분히 미국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존 리 대표는?

△1958년생 (한국명 이정복)△서울 여의도고 졸업 △미국 뉴욕대 회계학과 졸업 △KPMG 회계사 △1991년 미국 스커더스티븐스&클라크 펀드매니저 △2006년 라자드자산운용 전무△2014년~현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존 리 대표의 인터뷰 내용은 이데일리 유튜브 채널 <주톡피아>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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