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맘 다이어리]육아휴직을 위한 `잔다르크`가 돼 볼까

  • 등록 2015-01-11 오전 8:00:00

    수정 2015-01-13 오후 2:49:49

[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세상엔 정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좁은 대학문을 거치면 더 좁은 취업문이 나오고, 그 문을 통과하면 바늘구멍만한 결혼문이 펼쳐진다. 간신히 마음 맞는 사람 만나 결혼에 골인하면 이제는 출산이다. 불임클리닉마다 넘쳐나는 부부들을 볼때면 출산의 문도 점점 좁아지는게 확실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좁은 문이 있으니 바로 육아휴직의 문이다.

직장여성들은 임신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회사에 언제 말할까’를 놓고 고민한다. 내가 대한민국의 장래를 책임질 인구를 한 명 늘리는 애국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자꾸 죄인이 된것만 같은 기분이다. 어렵게 입을 떼도 상사의 “축하한다”는 말끝이 어쩐지 흐리다.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미생’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해 많은 여성들의 공분을 샀다. 셋째를 임신한 여직원을 향한 동료 직원들은 “기껏 교육시켜놓으면 남편에 결혼에 아기에..여자들은 진짜 이기적”이라고 혀를 찬다. 회사에 당장 일할 사람 한 명 줄어드는게 고용주 입장에서 기쁠리 만무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자면 미래의 인재 한 명을 늘려주는건데 그런 얘기는 아무도 안한다. “애낳고 3개월이면 출근할 수 있지?” 이제 막 임신한 직원에게 꽂히는 상사의 한마디다.

육아휴직 후 복귀해도 기분상하는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육아휴직’이라는 배려를 해준거라며 승진에서 누락된다. 인사고과도 최하위 점수다. 휴직 전까지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피해갈 순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여자가 팀장으로 올라가려면 3가지 중 한가지에 해당돼야 한단다. 결혼을 안했거나 애가 없거나 돌싱이어야한다는 것. 아기 있는 엄마가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가정은 거의 내려놔야 한다는 얘기다.

나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업무특성상 저녁약속과 술자리가 잦은 기자에게 어쩌면 임신은 치명타였다. 그래서인지 여기자는 출산휴가 3개월만 쓰고 복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을 꽉꽉 채워쓴 여기자는 아마 언론계를 통틀어 몇 안될 것이다. 다른 민간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소위 ‘메이저’라고 불리는 회사일수록 육아휴직은 꿈도 못꾼다. 전문직은 더하다. 물론 공공기관은 얘기가 다르다. 교사 등 공무원은 아기 세 명을 줄줄이 낳고 내리 9년을 휴직하고도 당당히 복귀한다. 이쯤되면 여대생들을 모아놓고 적성이고 뭐고 무조건 공무원이 되라고 설득해야하나 싶다. 실제 통계로도 2012년 기준 출생아수 대비 육아휴직자 수의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지난 1년간 나는 매달 육아휴직수당 85만원과 양육수당 20만원씩 총 105만원을 손에 쥐었다(육아휴직수당은 통상임금의 40%로 상한 100만원·하한 50만원이다. 휴직기간 중 85%를 받고 복직한 후 나머지 15%를 지급한다). 그 돈을 받은 첫 느낌은 “제도는 잘 갖춰져있구나”였다. 일 안하고 집에서 아기 키우는데 정부에서 이정도 주면 괜찮은 것 아닌가.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건 ‘더 좋은 제도’가 아닌 있는 제도를 내 회사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처음으로 나서주는 ‘잔다르크’다. 내가 여기자임에도 육아휴직을 꽉 채워쓸 수 있었던 건 윗 선배들이 용기내서 기존 인식의 틀을 깨줬기 때문이다. 그 선배 이후 모든 여기자들은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쓰는 문화가 정착됐다. 만약 나라면 선배들처럼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었을까? 아마도 눈물을 머금고 3개월만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한 명의 직원이 회사의 문화를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자칫 밉보이면 계약해지되는 비정규직에겐 더욱 언감생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올해부터 확대한다는 ‘자동육아휴직’ 제도가 효과가 있길 바란다. 출산휴가 신청시에 육아휴직이 자동으로 신청되게끔 만들겠다는 건데 실제 얼마나 시행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의도 자체는 매우 바람직하다. 잔다르크 없이도 마음껏 육아휴직을 쓰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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