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리아의 조건]보여주기식 단기성과에 예산 '펑펑'…미래 성장전략 '나몰라라...

  • 등록 2016-10-04 오전 5:00:30

    수정 2016-10-04 오전 8:41:59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우리나라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내년 ‘4대 전략 목표’는 성장 기반 구축·재정 및 공공 효율성 제고·대외 협력 강화·행정 지원 확충 등이다. 여기에 쓰는 사업 예산은 총 1조 3730억원이다. 이중 대외 협력 강화 예산이 1조 1494억원으로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최저 0.01% 금리로 최장 40년간 자금을 빌려주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예산이 올해 1724억원에서 내년 8087억원으로 대폭 늘어난다. 개도국 차관 사업을 무상 컨설팅해주는 비용도 올해 0원에서 내년 139억원을 신규 반영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연차총회 국내 개최 예산은 65억 5800만원을 새로 반영했다. AIIB는 정부가 약 4조 3000억원을 출자했다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돌발 사퇴로 부회장직을 날려버린 국제 금융기구다.

반면 중장기 발전 전략 등 경제 정책 수립에 쓸 재원은 대부분 동결 또는 삭감됐다. 저출산·고령화 등 미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경제 전략 기획 사업’ 예산은 지난해 11억 8300만원(결산 기준)에서 올해 9억 4500만원(이하 예산 기준), 내년 8억 9600만원으로 매년 줄고 있다.

청년 세대와 소통을 강화해 정책을 발굴하겠다며 마련한 ‘청년위원회 운영’ 예산도 올해 46억원에서 내년 44억 300만원으로 삭감됐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관련 예산은 올해 3억 8700만원에서 내년 2억원으로 아예 반 토막이 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아젠다(의제)를 집대성한 것이지만, 성과 보고회 개최 후 백서 하나 내고 치워버리자는 식이다.

장기전략국이 ‘파업 대책’ 담당…코앞만 본 구조조정

저성장 진입 위기에 놓인 한국을 구할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어디에도 여기 부응할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권 입맛에 맞춘 단기 부양책이나 과시성 외국 퍼주기가 아닌, 국가 백년대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 정부 때인 2012년 1월 기재부 안에 신설한 장기전략국(현 미래경제전략국)이 대표적이다. 당시 설립 취지는 중장기 정책 과제를 연구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목적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올해 이 부서가 내놓은 보도자료의 약 70%(16건 중 11건)는 부총리·차관의 현장 방문 행사에 관한 것이었다. 정책을 다룬 것은 지난 4월 발표한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 한 건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노동계 파업까지 떠맡아 단기 대응 방안을 짜야 했다. 올해 국 안에 기후경제과가 새로 생기긴 했지만, 환경부가 맡던 배출권 거래제 운용 업무를 넘겨받은 것이다.

올해 최대 이슈로 떠오른 산업 구조조정은 코앞만 본 대책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가 작년 10월 4조 2000억원 규모 자금 지원을 결정한 대우조선해양(042660)은 불과 1년 만에 구조조정 계획을 새로 짜야 할 판이다. 올해 신규 수주량이 정부가 지난 6월 추정한 62억 달러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0억 달러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회사를 살리기로 한 것은 국책 금융기관이 지금까지 투입한 매몰 비용 손실, 대량 실업에 따른 정치적 파장 등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와 더 큰 후폭풍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구조조정이 일단락된 후 어떤 평가를 받을지가 벌써부터 걱정된다”고 말했다.

‘묻지마’식 개혁 추진…민심 외면해 여소야대 자초

민의를 헤아리지 못한 ‘묻지 마’ 정책 추진으로 부작용만 낳은 사례도 있다. 정부가 ‘4대 구조개혁 과제’의 하나로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개혁과 서비스 산업 활성화 방안 등이 여기 해당한다. 귀족 노조 깨기에만 열을 올릴 뿐 안전망 강화를 등한시하고, 의료 영리화 이슈의 서민 체감도를 간과했다가 정책 진척은커녕 지금의 ‘여소야대’ 국면을 자초하는 등 스스로 제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국민 반발이 큰 이슈라면 정부가 우회적인 전략을 택하는 등 민심을 달래야 하는데 정공법만 고집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권마다 경제 발전 청사진을 내놓지만, 장기적인 목표를 굳건히 추진하는 체계가 없는 것도 문제”라며 “저출산·고령화, 사교육 문제 등은 이미 그 심각성이 임계점에 도달했으므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 기구를 바탕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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