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대한민국 통신 130년, 따로국밥 통신

  • 등록 2015-09-22 오전 12:30:53

    수정 2015-09-22 오전 3:13:44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1885년 9월 28일, 한성전보총국이 만들어져 한성과 제물포간에 첫 전신이 시작됐을 때, 통신이 우리의 삶을 이토록 변화시킬 줄 예상한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점으로 부호로 의미를 전하는 전신이 아닌 음성 전화가 고종황제가 머물던 경운궁에 설치된 것은 1896년이다. 그 뒤 1960년대 백색전화·청색전화(회선이 부족했던 시절, 자유롭게 사고 파는 백색전화와 판매가 금지된 청색전화로 나눠졌다)시대를 거쳐, 1986년 1가구 1전화 시대(국산 전전자교환기인 TDX-1 상용화 덕분이다)가 열렸다.

이후 1995년 무궁화 1호 위성 발사, 1996년 세계최초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화에 성공한 덕분에 1인 1전화 시대로까지 발전했다. 지금은 4G LTE이니, 초고화질(UHD) TV니, 5G니 하는 말들이 쏟아지지만, 불과 130년 전 모오스 부호 같은 전신이 처음이었을 뿐이다.

21일 한성전보총국이 설립된 서울 광화문 세종로에서 열린 ‘대한민국 통신 130년 역사박물관 개관 기념식’은 통신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자리였다.

경제발전의 주역으로서 생활혁명의 인프라로서 한국의 통신기업들이, 정부가, 전문가들이 흘린 구슬땀을 칭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체신부-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KT로 이어지는 역사를 갖는 KT가 주도한 것 자체는 좋았지만, 함께 역사를 만들어 온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같은 경쟁 회사들은 기념식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130년 역사의 고비마다 울고 웃었던 통신 원로 그룹들에 대한 의전도 미흡하기 그지 없었다.

KT는 비공식적으로 경쟁사 CEO들에게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부했다고 한다. 행사에 참석한 전 KT 한 CEO는 “황창규 회장에게 물었더니 다른 곳을 초청했지만 오지 않았다고 하더라. 참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정통부 장관 출신이자 KT CEO 출신인 이상철 부회장이 이끄는 LG유플러스는 ‘대한민국 데이터와 비디오의 역사 LG유플러스’라는 참고 자료를 내고,별도로 데이터 통신의 시작은 유플러스 전신인 데이콤(한국데이터통신)이며, 최초의 PC통신은 천리안이라고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통신 130년 기념식을 KT 단독이 아닌 정부나 통신사들이 모인 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아니 통신 덕을 봤다는 인터넷기업협회 같은 곳과 함께 주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원로 그룹들에 대한 예우도 매우 미흡했다. 공식 행사 때는 물론 기념사진 촬영에서도 이준·이계철·이용경 등 전 KT CEO들이나 오명 전 과기부총리, 서정욱 전 과기부 장관,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등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나 최성준 방통위원장, 홍문종 국회 미방위 위원장도 ‘통신 130’년을 축하하고 덕담을 줄 수는 있지만, TDX 상용화로 통신강국의 초석을 다지고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인터넷 네트워킹에 성공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에게는 머쓱한 자리였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기자는 이것이 통신의 한계인지, 언제나 냄비처럼 현존하는 권력에만 충실한 우리들의 현실인지 헷갈렸다. 130년이 지났지만, 통신이 대중에게 다가가기는 한참 먼 걸 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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