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야권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인사난맥’을 넘어 ‘인사참사’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사권자의 묵묵부답 속에 집권여당이 먼저 사과에 나섰지만 그들의 속내도 부글부글 끓는다. ‘국민의 눈에 한심하게 비치는…청와대 검증팀의 무능’ 등 정권초기임에도 수위높은 비판이 여권의 입을 통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이다.
낙마한 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판의 화살은 부실한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수첩인사’를 겨냥하고 있다.
◇국정키워드 후보자 ‘줄 낙마’…“김병관 아니었으면”
박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차관급 이상 정무직 인사 가운데 현재까지 낙마자는 총 6명이다. 여기에 전임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인선을 상의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까지 더하면 7명의 고위급 인사들이 정부출범 한달도 되지 않아 사퇴했다.
무엇보다 새정부 첫 조각(組閣)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핵심 국정 키워드로 제시한 분야에서 하나같이 낙마자가 나온 점은 단순히 숫자 못지않은 파급력을 가진다.‘책임총리’(김용준 국무총리), ‘창조경제’(김종훈 미래부 장관), ‘굳건한안보’(김병관 국방부장관), ‘경제민주화’(한만수 공정위원장), ‘법질서’(김학의 법무차관), ‘중소기업 상생’(황철주 중기청장) 등이 그들이다.
황교안 법무·서남수 교육·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도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전관예우 등의 논란 속에서 청문경과보고서에 ‘부적격’의견이 다수 기재됐다. 대통령이 야권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경우다. 이 때문에 김병관 후보자 등 연이은 낙마사태가 ‘여러명의 후보자를 운좋게 살렸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여권내에서조차 나온다.
◇‘수첩 속 단수후보’가 인사시스템 무력화
정치권에서는 인사참사의 원인으로 청와대의 부실한 인사검증시스템을 우선 지목한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25일 불교방송 라디오에 나와 “청와대 인사팀이 인사팀장까지 포함하면 정원이 10여명인데 지금은 3~4명밖에 갖추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후보가 추천됐을때 검증하는 팀도 아직 체계가 안 잡혔다는 지적들이 최근 낙마사태로 실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수첩속 단수후보’를 일방 통보하고, 여기에 ‘노(NO)’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과정에서 인사시스템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박 대통령이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 통보해버리고, 내정자가 수락하면 그 이후 검증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인사시스템 자체를 평가할 만큼의 수준도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더이상의 ‘인사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인사시스템 정비 못지 않게 박 대통령의 발상전환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진 경기대 교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1년차 초반부터 레임덕에 진입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청와대내 인사위원회의 시스템과 멤버 등이 명확히 책임지면서, 외부전문가 자문도 적극적으로 구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는 “지금처럼 완전한 톱다운(상명하달) 형식으로 인사가 진행되면 계속해서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역대정권과 비교해도 너무 심하다”며 “대통령이 마음에 둔 인사라 해도 똑같은 검증시스템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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